수천 년 동안 호기심은 ‘혼자 궁금해하는 힘’이라고 배워왔다. 철학자도, 과학자도, 자기계발서도 한 목소리로 말했다 — 호기심을 키우고 싶다면 혼자 파고들어라, 더 많이 읽어라, 더 깊이 탐구하라. 그런데 MIT Press에서 출간된 책 “Curious Minds”의 저자들은 이 믿음이 호기심의 절반만 설명한다고 말한다. 호기심의 진짜 원동력은 개인의 내면이 아니라 관계 속에 있다.
(처음 이 말 들었을 때 “그게 무슨 소리야” 했다. 솔직히 나도 그랬다.)
호기심에 대해 우리가 오해해온 것
서양 철학은 수천 년간 호기심을 개인의 정보 욕구로 정의해왔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경험에 대한 욕망”, 존 로크는 “지식에 대한 식욕”, 프로이트는 “탐구 충동”이라고 불렀다. 공통점? 전부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된다는 거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정보 탐색 동기’라고 부른다. 뭔가 모르는 게 생기면 불편함을 느끼고, 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정보를 찾아나서는 것. 혼자 구글 탭을 열고, 혼자 책을 펼치고, 혼자 유튜브를 뒤지는 그 패턴 말이다.
근데 여기서 반전이 있다. 이런 방식으로 호기심을 채우다 보면,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게 되는데 호기심 자체는 오히려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정보는 쌓이는데 뭔가 더 알고 싶다는 느낌은 사라지는 것. 이 현상을 겪어본 적 있지 않나?
진짜 호기심은 ‘수집’이 아니라 ‘엮기’다
미국 아메리칸대학교 철학과 페리 저른(Perry Zurn) 교수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신경공학과 다니 배셋(Dani Bassett) 교수는 공동 저서 “Curious Minds”에서 호기심의 새로운 모델을 제안한다. 바로 ‘엣지워크(edgework)’ — 정보를 수집하는 게 아니라, 실마리를 따라가며 관계망을 엮는 행위다.
아동 소설 “공주와 고블린”의 주인공 아이린이 손가락 사이에 실을 걸고 세상을 누비며 실이 이끄는 곳을 따라가듯이 — 호기심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쌓는 게 아니라 아직 연결되지 않은 것들을 잇는 힘이라는 거다.
헨리 제임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경험은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가장 얇은 비단실로 짜인 거대한 거미줄과 같다.” 좋은 비유다. 혼자서는 실 한 가닥밖에 못 만든다.
내 호기심은 어디서 왔을까?
17세기 덴마크 박물학자 올레 웜(Ole Worm)의 이야기를 해보자.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거북이 껍데기, 화석, 코인, 원주민 예술품을 수집해 코펜하겐에 유명한 박물관을 세웠다. 전형적인 고독한 탐구자의 이미지다.
그런데 저자들의 시각은 달랐다. 그 방대한 컬렉션 하나하나는 사실 광범위한 인간관계망, 무역 네트워크, 사람과 사람의 연결에서 가능했던 것이었다고. 올레 웜의 호기심은 절대 혼자가 아니었다. 수학 용어 ‘탄젠트’를 고안한 아내 도로시, 수많은 협력자들, 그가 연결된 모든 관계가 그의 호기심을 함께 빚어냈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사회적 인식론(social epistemology)’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무엇을 궁금해하느냐는, 우리가 어떤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내가 요즘 무엇에 궁금한지를 보면 내 관계망이 보인다. (생각해보면 꽤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공통적인 관계 습관
포타와토미(Potawatomi) 원주민 식물학자 로빈 월 키머러는 대학에서 분류학적 이름과 기능적 사실을 외우며 식물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뭔가 빠진 느낌이 계속 들었다. 원주민 공동체와 다시 연결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친밀함이 우리에게 다른 방식의 봄(seeing)을 준다.”
미셸 푸코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기존의 관계망을 ‘비스듬히(slantwise)’ 걸으며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가는 것, 그게 살아있는 호기심의 움직임이라고. 더 많은 연결이 생기면, 더 많은 가능성이 생긴다. 패브릭(fabric)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것을 만들(fabrication) 수 있다는 거다.
결국 호기심이 풍부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혼자 더 많이 파고드는 게 아니라,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함께 질문을 나누는 것에 있다.
오늘 당장 해볼 수 있는 것
- 혼자 검색하던 것을 누군가에게 질문으로 던져봐. “나 이거 궁금한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한 마디로 시작해도 된다. 답을 받으러 가는 게 아니라, 같이 궁금해하는 시간을 만드는 거다.
- 같은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과 30분. 커피 한 잔이면 충분하다.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가 아니라, 같이 실마리를 엮어가는 자리로 생각해봐.
호기심은 혼자 파고들수록 커지는 게 아니다. 같이 궁금해할수록, 더 넓은 실마리가 생기고 더 깊이 자란다. 마침 오래 연락 못 한 친구가 떠오른다면 — 지금이 완벽한 타이밍일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