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 마감 전날 기획 방향을 뒤집었다. 그런데 옆자리 민준이는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알겠습니다”라고 답한다.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저 사람은 대체 아무것도 안 느끼는 건가? 멘탈이 강한 사람은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근데 그건 완전한 오해다. 진짜 비밀은 다른 데 있다.
멘탈 강한 사람도 퇴근 전에 속이 탄다
미국의 심리치료사 에이미 모린(Amy Morin)은 사이콜로지 투데이에 쓴 글에서 자신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치료사로 일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3년 후엔 26살 남편 링컨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3년 안에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을. 나라면 그냥 멈췄을 것 같다.)
그런데 그녀는 일을 계속했다. 슬프고, 불안하고, 지쳐 있으면서도 상담실에서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멘탈이 강해서 감정이 없었던 게 아니라, 감정이 있는 채로 버텨낸 거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멘탈 스트렝스(Mental Strength)’라고 부른다. 모린에 따르면, 멘탈 스트렝스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고통을 자랑하는 게 아니다. 생각·감정·행동을 자신의 목표와 가치에 맞게 조절하는 능력이다. 상담실에서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저 멘탈이 약한 것 같아요”인데, 사실 대부분은 약한 게 아니라 조절하는 법을 아직 배우지 않은 것뿐이다.
회복탄력성이랑 멘탈 스트렝스는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멘탈 스트렝스를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회복탄력성은 힘든 일 이후 다시 튕겨 올라오는 힘이다. 중요한 능력이 맞다. 근데 생각해보자. 인생 내내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긴장 속에서 살다가,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는 것만 반복하는 삶. 그게 좋은 삶일까?
멘탈 스트렝스는 힘든 시기를 버티는 것만이 아니라, 좋은 시기에 최대한 잘 사는 것까지 포함한다. 야근이 없는 날도, 팀장이 칭찬해준 날도,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풀리는 날도 — 그때 제 실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것. 그게 멘탈 스트렝스다.
모린은 자신의 책 The Mental Strength Playbook에서 “멘탈 스트렝스는 생존(survive)이 아니라 번성(thrive)”이라고 표현했다. 다르게 말하면, 멘탈이 강한 사람은 힘들 때만 빛나는 사람이 아니다. 잘 될 때도 잘 사는 사람이다.
왜 유독 직장에서 멘탈이 시험받을까
직장은 멘탈이 가장 많이 시험받는 공간이다. 이유가 있다. 개인 생활에서는 내가 누구와 시간을 보낼지, 무엇을 할지 어느 정도 선택권이 있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팀원을 내가 고르지 않는다. 업무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 규칙은 조직이 정한다.
홍대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는 30대 서연이를 생각해보자. 기획서 마감 전날 팀장이 방향을 뒤집었다. 화가 났지만 화낼 수 없었다. 지쳤지만 야근을 해야 했다. 동료가 실수를 했지만 탓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이 매일 반복된다. 그런데 이 똑같은 환경이, 동시에 멘탈을 매일 조금씩 훈련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기도 하다.
게다가 요즘은 카카오워크 알림이 자정에도 울리고, 재택근무로 퇴근이라는 경계 자체가 흐릿해졌다. 팬데믹 이후 직장인 번아웃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가 됐다. 그럴수록 멘탈 스트렝스는 단순한 심리학 개념이 아니라 직장에서 살아남는 경쟁 우위가 된다.
오늘 당장 해볼 수 있는 것
멘탈 스트렝스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훈련하는 거다. 오늘 바로 시도해볼 수 있는 두 가지:
1. 감정에 이름 붙이기. 퇴근 후 “아 오늘 힘들었다”로 끝내지 말고, 정확히 뭘 느꼈는지 한 단어로 잡아본다. 불안인지, 억울함인지, 지침인지. 심리학에서는 감정을 명명하는 것만으로도 감정 강도가 줄어든다고 본다. 이걸 ‘정서 명명화(affect labeling)’라고 하는데, 뇌의 감정 처리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 (생각보다 효과가 꽤 확실하다.)
2. 반응과 행동 사이에 1초 두기. 팀장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즉각 반응하는 대신, 의식적으로 1초 멈춘다. 생각·감정·행동을 조절한다는 것의 핵심은 자동반응을 끊는 데 있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그 1초가 생각보다 길다.
완벽하게 바뀌지 않아도 된다. 멘탈이 강한 사람은 아무것도 안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느끼면서도 잘 다루는 사람이니까. 마침 오늘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딱 한 번 해볼 수 있다. 지금이 시작하기 완벽한 타이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