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에게?” 되뇔수록 더 힘들어지는 이유

힘든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있다. “왜 하필 나에게?” 당연한 반응이다. 그런데 그 질문을 반복할수록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든다는 거, 알고 있었나?

이미지 출처: Tiny Buddha

“왜 나에게?”라고 물을 때 뇌에서 일어나는 일

이 질문이 처음 올라올 때는 순수한 의도다. “이유를 알면 뭔가 나아지겠지”라는 마음. 근데 심리학에서는 이걸 루미네이션(rumination), 즉 반추 사고라고 부른다. 같은 생각을 반복해서 씹고 또 씹는 것. 처음엔 이해를 위해 시작했는데, 씹을수록 그 감각이 더 크고 무겁게 느껴진다.

“왜 내가 이 병에 걸렸지?”,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이게 다 카르마인가?”. 한 질문이 또 다른 질문을 낳고, 결국 처음보다 훨씬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왜 나에게?”는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질문만 쌓인다. (상담실에서 진짜 자주 보는 패턴이다.)

답을 찾을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이유

“왜 나에게?”는 과거를 향한 질문이다. 이미 일어난 일의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런데 원인을 아무리 찾아도, 일어난 일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빅터 프랭클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 안에 우리의 선택 능력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왜 나에게?”는 그 공간을 막아버린다. 과거의 이유에 매달리다 보면,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질문은 우리를 비교하게 만들고, 억울하게 만들고, 기다리게 만든다 — 답이 오면 뭔가 달라질 것처럼. 그러나 답은 대개 오지 않는다. 설령 온다 해도, 이미 일어난 일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질문 하나를 바꿨을 때 달라지는 것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학에서 자주 쓰는 기법 중 하나가 바로 인지적 재구성(cognitive reframing)이다. 질문의 방향을 바꾸는 것.

“왜 나에게?” 대신 “지금 나 뭘 할 수 있지?”

이 질문은 방향이 전혀 다르다. 과거가 아닌 지금을 향한다. 거창한 해결책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지금 내가 가진 에너지로, 오늘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다음 걸음이 뭔지를 묻는다.

오늘 할 수 있는 게 병원 예약 전화 한 통이라면, 그게 충분하다. 오늘 할 수 있는 게 그냥 누워서 쉬는 거라면, 그것도 충분하다. 어떤 날은 두려움에 더 이상 두려움을 얹지 않는 것 자체가 행동이다.

사실 이건 “수용”이라는 개념과도 닿아 있다. 수용은 포기가 아니다. 지금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 그 자리에서 비로소 움직임이 시작된다. (쉽지 않다는 거 안다. 근데 진짜다.)

오늘 당장 해볼 수 있는 것

“왜 나에게?”가 올라올 때 억지로 막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이렇게 해봐라.

첫째, 그 질문이 올라오는 순간을 알아채는 것. 그냥 “아, 나 지금 많이 지쳤구나”라는 신호로 읽으면 된다. 틀린 감정이 아니다.

둘째, 그다음에 딱 하나만 물어봐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한 가지가 뭐지?” 물 한 잔 마시는 것도, 창문 열어 환기시키는 것도 된다. 행동의 크기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시작이다.

“왜 나에게?”라는 질문이 올라온다면, 그건 네가 힘들다는 신호다. 그 신호를 부정할 필요 없다. 잠깐 인정해주고, 그다음 조용히 물어봐.

“지금 나 뭘 할 수 있지?”

답을 모두 알 필요 없다.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한 걸음이면 충분하다. 마침 오늘 하루가 이제 막 시작됐으니, 지금이 딱 좋은 타이밍일지도.

이수진

심리연구소에서 심리상담사 겸 콘텐츠 마케터로 일한다. 가끔 코딩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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