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한 명쯤 있지 않나? 딱히 뭘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왠지 나를 불편해하는 사람. 같은 공간에 있으면 대화가 어색해지고, 내가 아이디어를 내면 표정이 묘하게 굳어지는 그런 사람. 어떻게 해야 사이가 좀 나아질까 고민해봤겠지만, 답은 생각보다 훨씬 반직관적인 곳에 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 내 편 만드는 법이 진짜 존재한다. 그리고 200년 전에 이미 증명됐다.
10년간 서먹했던 두 사람이 어떻게 가까워졌을까
심리학자 아담 그랜트와 취약성 연구자 브레네 브라운은 한때 꽤 불편한 관계였다. 그랜트가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브라운의 연구를 맥락 없이 인용한 게 발단이었다. 브라운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링크드인 공방으로 번졌다. 이후 수년간 두 사람은 서로 거의 접촉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어색한 직장 동료 이야기가 아니다. 심리학계에서 손꼽히는 두 인물이 수년간 제대로 화해를 못 했다는 거다. (이쯤 되면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게 새삼 실감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랜트가 여성 스포츠팀을 코칭하다 예상치 못한 저항에 부딪혔다. 외부 연사가 필요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10년간 불편했던 브라운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함께 일해줄 수 있겠어요?”
브라운은 수락했다. 두 사람은 처음으로 직접 만났고, 오해는 풀렸다. 지금 이 두 사람은 팟캐스트 ‘The Curiosity Shop’을 공동 진행하고 있다. 이걸 가능하게 한 건, 그랜트가 먼저 브라운에게 무언가를 부탁했다는 사실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 내 편 만드는 법, 진짜 있었다
이 변화의 핵심은 벤 프랭클린 효과(Ben Franklin Effect)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이렇게 부른다.
200년 전,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은 자신을 싫어하는 정치적 라이벌을 포섭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무언가를 얻어내려 하지도, 좋은 인상을 심으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대신 상대방에게 먼저 작은 부탁을 건넸다.
“혹시 책 한 권 빌려줄 수 있겠습니까?”
정적은 빌려줬다. 그리고 나서 프랭클린에게 조금씩 우호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근데 이게 200년 전 일인데 지금도 통한다고? 그랜트 말로는 통한다.)
왜 부탁이 관계를 바꿀까 — 뇌가 만들어내는 자기합리화
이 현상은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설명된다. 인간의 뇌는 내 안에 모순이 공존하는 걸 매우 불편해한다.
“나는 저 사람이 싫다” → “근데 내가 저 사람을 도왔다.”
이 두 생각이 동시에 존재하면 뇌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자동으로 인식을 바꿔버린다.
“사실 저 사람,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랜트의 설명을 빌리자면, 우리가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면 그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된다. 역방향으로도 작동한다. 내가 누군가를 싫어할수록, 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은 경험이 생기면 내 뇌는 더 강하게 재보정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내가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상대가 나를 도운 경험이 쌓여야 한다는 것. 더 잘 보이려고 친절을 베푸는 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상대는 그 친절을 ‘아첨’으로 읽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상대에게 진심으로 도움을 요청하면, 상대의 뇌는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상담실에서도 자주 보이는 패턴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시작한 관계가, 사소한 부탁 하나를 계기로 의외로 빠르게 풀리는 경우가 꽤 된다. 근데 이걸 먼저 시도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싫어하는 것 같은 사람한테 부탁을 건넨다는 게 자존심 상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 (솔직히 나도 그랬다.)
직장 내 적대적 관계, 이렇게 시작해봐라
핵심은 상대방이 잘 아는 영역에서 조언이나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전문성이나 경험을 인정하는 제스처이기 때문에 거부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였을 때 상대는 자신도 모르게 더 긍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써볼 수 있는 것들:
- “이 자료, 한번 봐줄 수 있어요? 의견이 궁금해서요.”
- “요즘 읽을 만한 책 있으면 추천 좀 해줄 수 있을까요?”
- “이 부분은 제가 잘 모르는데, 혹시 경험 있으세요?”
거절당해도 잃을 게 없다. 수락하면 관계 개선의 첫 번째 도미노가 넘어가는 것이다.
오늘 당장 해볼 수 있는 것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 없다.
- 그 사람이 잘 아는 주제에 대해 짧게 조언을 구해본다. 관련 없는 잡담이 아니라, 상대의 전문성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형식으로.
- 아주 작은 부탁 하나를 건넨다. “이거 5분만 봐줄 수 있어요?” 수준으로 충분하다.
완벽한 관계 변화를 기대하는 게 아니다. 첫 번째 도미노를 넘기는 것이 목표다. 나머지는 상대방의 뇌가 알아서 한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더 잘 보이려고 애쓰는 건 생각보다 피곤하고, 효과도 별로다. 심리학은 오히려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그 사람에게 먼저 뭔가를 부탁해봐라. 200년 전 벤 프랭클린도, 10년간 불화를 겪은 아담 그랜트도 그렇게 했다. 마침 내일 그 사람 만날 일 있다면, 지금 바로 부탁할 거리를 하나 생각해두는 게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