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행동치료(CBT)는 현대 심리학에서 가장 검증된 치료법 중 하나입니다. 수십 년의 임상 연구, 수백만 명의 환자. 그런데 CBT를 창시한 앨버트 엘리스는 나중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에픽테토스를 읽고 자랐다.” CBT보다 2,500년 앞서 같은 원리를 발견한 철학이 있었다는 겁니다. 바로 스토아 철학입니다.
스토아 철학은 “이를 악물고 참는” 철학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근데 그건 완전히 틀린 이해입니다. 스토아 철학의 핵심은 참는 게 아니라,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서 90%를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2,500년 전 철학자들이 발명한 마음 해킹입니다.
스토아 철학은 ‘참는 것’이 아니다
스토아 철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표정 없는 얼굴, 꼭 다문 입술, 주먹 쥐고 버티는 모습. 그런데 이건 스토아를 완전히 잘못 읽은 겁니다.
에픽테토스는 그리스 출신의 노예였습니다. 실제로 노예였어요. 주인이 다리를 부러뜨려도 표정 하나 안 변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참는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그는 고통의 원인이 다리가 부러지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사람은 사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자신의 판단에 의해 교란된다.”
이게 스토아 철학의 전부입니다. 다리가 부러지는 건 사건입니다. 다리가 부러졌으니 내 인생은 끝났다는 건 판단입니다. 사건은 바꿀 수 없어도 판단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이 고통의 90%를 만들어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건 사건이 아니라 판단이다
스토아 철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가 “통제 이분법”(Dichotomy of Control)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 내 것: 내 생각, 내 판단, 내 욕구, 내 행동
- 내 것이 아닌 것: 내 몸, 평판, 재산, 타인의 반응, 날씨, 경제 상황
에픽테토스는 말합니다. “내 것이 아닌 것에 에너지를 쏟는 것이 불행의 원인이다.” 상사가 나를 무시했다, 주식이 떨어졌다, 비가 온다. 이것들은 전부 내 통제권 밖의 사건입니다. 근데 우리는 여기에 감정 에너지를 몽땅 씁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인간이 원래 그런 동물인데요(…). 그런데 문제는 이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겁니다. 상사에게 화를 낸다고 상사가 바뀌지 않습니다. 주가 하락에 분노한다고 주가가 올라가지 않습니다. 현대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통제 이분법을 의식적으로 적용하는 사람들은 스트레스 대응 능력이 유의미하게 향상되었습니다.
스토아 철학이 CBT의 원형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앨버트 엘리스가 1955년에 창시한 REBT는 에픽테토스의 이 원리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겁니다. “사건이 아니라 해석이 감정을 만든다.” 2,500년 전 이야기입니다.
지옥 같은 7년을 버틴 사람의 비밀
제임스 스톡데일은 베트남전 미 해군 제독이었습니다. 1965년, 그는 베트남 상공에서 격추되어 포로가 됩니다.
이후 7년 동안 그는 하노이 힐턴이라 불리는 포로수용소에 갇혔습니다. 뼈가 부러지고, 굶주리고, 독방에서 수개월을 보냈습니다. 고문은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살아남았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온전하게.
그가 나중에 밝힌 심리적 동반자는 에픽테토스의 철학이었습니다. 해군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읽었던 《엥케이리디온》.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한다.” 스톡데일은 나중에 이렇게 썼습니다. 원문에서 직접 인용하면, “에픽테토스의 강의실이 병원이었다면, 내 감옥은 실험실이었다. 나는 그의 이론을 실험실에서 검증했다. 그리고 그는 최고 점수로 합격했다.”
고문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문에 대한 자신의 반응은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스토아 철학의 핵심입니다.
오늘 당장 써먹는 스토아 3가지 도구
2,500년 된 철학을 오늘 적용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① 통제 이분법 체크
무언가로 인해 화가 났을 때, 먼저 물어봅니다. “이게 내 통제권 안에 있나, 밖에 있나?” 통제권 밖이라면 — 에너지 낭비입니다. 통제권 안이라면 — 행동합니다. 《엥케이리디온》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떤 것들은 우리 안에 있고, 어떤 것들은 우리 밖에 있다.” 단순하지만 매일 쓸 수 있는 필터입니다.
② 부정적 시각화
스토아 철학의 또 다른 도구입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리 생각해두는 겁니다. 아침에 잠깐, 오늘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들을 떠올려봅니다. 건강, 관계, 직업.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요(…). 실제로는 반대 효과가 납니다.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 시각화를 실천한 집단은 현재 가진 것에 대한 감사가 높아지고 불안이 낮아졌습니다. 잃을까봐 두려운 게 아니라, 아직 있다는 사실이 선명해지는 겁니다.
③ 판단과 사건 분리하기
무언가 불쾌한 일이 생겼을 때 의식적으로 해봅니다. “이건 사건이다. 내 판단이 아니다.” 상사가 내 제안을 거절했다. 이건 사건입니다. ‘나는 무능하다’는 건 판단입니다. 사건은 중립적입니다. 고통은 판단이 만듭니다. 이 분리 연습을 하루에 한 번만 해도 꽤 달라집니다. 저도 써보니까 정말 효과가 있더군요.
결론은 이겁니다. 스토아 철학은 인내가 아니라 정밀한 마음 조작법입니다. 고통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내 통제권 안에 있는 것에만 에너지를 씁니다. 2,500년 전 노예 철학자가 발명했고, 베트남 포로수용소에서 검증됐고, 현대 심리학이 CBT라는 이름으로 다시 포장한 방법입니다.
오늘 한 가지만 해보십시오. 화나는 일이 생겼을 때 딱 3초 — “이게 내 통제권 안인가, 밖인가.” 물어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