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이수진이다. 요즘 상담실에서 유난히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아침마다 거울 보면서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충분히 가치 있어’ 이런 말을 따라 하는데… 왜 더 우울해지는 걸까요?” 처음엔 뭐 이런 질문을 하나 싶었는데, 최근 2-3명이 연달아 똑같은 걱정을 털어놓는 걸 보고 진짜 패턴이구나 싶더라.
긍정 확언(Positive Affirmations), 정말 효과가 있을까? 유튜브·인스타그램·자기계발 책에서는 마치 기적의 도구처럼 소개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이 확언들이 누구에게나 효과적이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근데 여기서 반전이 있다. 자존감 낮은 사람한테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거다.
긍정 확언, 정말 효과 있을까?
2025년 발표된 대규모 리뷰 연구에서 67개 연구를 통합 분석한 결과가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긍정 확언은 ‘의미 있는’ 효과는 있지만, 효과 크기는 ‘작은’ 수준이다.
“의미는 있는데 작다고?” 좀 애매하게 들릴 수 있는데, 쉽게 말하면 이런 거다. 통계적으로는 분명 효과가 있다고 나오지만, 내가 체감할 정도로 인생이 확 바뀌는 수준은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효과가 나타나는 집단도 제한적이었다. 암 환자, 대학생, 임상적 우울증이 없는 사람들이 주요 대상이었다.
근데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자존감 낮으면 오히려 독이 된다
심리학계에서 꽤 유명한 2009년 연구가 있다. 이 연구에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 긍정 확언을 반복하게 했더니 어떻게 됐을까?
기분이 더 나빠졌다.
반대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확언 후 기분이 좋아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심리학에서는 이걸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로 설명한다. 내가 속으로 “나는 가치 없어”라고 믿고 있는데, 억지로 “나는 가치 있어”라고 되뇌면 뇌가 “뭐래? 거짓말하지 마”라고 반응하는 거다.
결국 내 현실과 확언 사이의 괴리가 더 크게 느껴지면서 기분은 더 가라앉는다. 진짜 아이러니하지 않나? 기분 좋아지려고 한 행동이 오히려 우울을 가중시킨다니.
상담실에서 내담자들한테 이 이야기를 해주면 다들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면서 안도한다. 자기가 이상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심리 반응이었다는 걸 알게 되니까.

독성 긍정성의 함정
긍정 확언의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심리학에서 요즘 핫한 용어 중 하나가 바로 ‘독성 긍정성(Toxic Positivity)’이다.
독성 긍정성이란 뭘까? 간단하게 말하면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강박에 빠져서 진짜 필요한 감정이나 도움을 무시하는 거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 힘들어 죽겠는데 “나는 행복해, 나는 강해”라고 되뇌며 감정을 억누른다
-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데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되겠지” 하며 전문가 상담을 회피한다
- 도파민 중독 — 확언을 반복하면 순간 기분이 좋아지는데, 이게 습관이 되면 현실 문제 해결 없이 계속 확언만 찾게 된다
가장 위험한 건 마지막이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긍정성에 집착하다 보면 경고 신호를 놓친다. 유해한 관계, 번아웃 직전의 직장, 건강 적신호 등을 “긍정적으로 보자”며 방치하는 거다. (제발 이러지 말자.)
그렇다면 뭘 해야 할까?
“그럼 긍정 확언은 다 쓸모없다는 거야?” 아니다. 핵심은 어떻게 사용하느냐다. 심리학 연구들이 제안하는 대안은 이렇다.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을 연습하자
긍정 확언 대신 자기 연민적 자기대화를 해보는 거다. 뭐가 다를까?
- ❌ 긍정 확언: “나는 완벽해” (현실과 괴리)
- ✅ 자기 연민: “지금 이건 정말 힘든 일이야. 나한테 너그러워져도 괜찮아” (현실 인정 + 위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기 연민적 대화가 밝은 긍정 슬로건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왜 그럴까?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나를 다독이기 때문이다.
상담실에서도 이 방법을 많이 권한다. “나는 할 수 있어”보다 “지금은 힘들지만,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존중할 거야”라고 말하는 게 훨씬 더 현실적이고 치유적이다.
3인칭 자기대화를 시도하자
또 하나 효과적인 방법은 3인칭으로 자기 자신에게 말하기다. 예를 들어:
- ❌ “나는 이 일을 해낼 수 있어”
- ✅ “수진이는 이 일을 해낼 수 있어”
처음엔 좀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근데 심리학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3인칭 자기대화는 감정적 거리두기를 만들어주고, 감정 조절을 더 잘하게 해준다. 마치 친구에게 조언하듯 자신을 대하게 되는 거다.
솔직히 나도 처음엔 “이게 되나?” 싶었는데, 막상 써보니까 꽤 효과적이더라. 특히 감정이 너무 격하게 요동칠 때 “수진아, 지금 너무 화났지?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하면 확실히 좀 진정된다.
오늘 당장 해볼 수 있는 것
완벽하게 긍정적일 필요 없다. 나한테 조금 더 너그러워져도 괜찮다. 오늘 이 글을 읽고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고 느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만약 긍정 확언을 하고 싶다면, 억지로 밝은 말을 되뇌는 대신 현실을 인정하는 연민적 대화를 시도해보자. 예를 들어:
- “오늘 하루 진짜 힘들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나 자신이 대단하다”
-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충분히 노력하고 있어”
마침 주말이 다가오고 있으니 지금이 시작하기 완벽한 타이밍일지도. 거울 앞에서 억지로 웃으며 긍정 확언을 외울 필요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럴 땐 전문가와 함께
만약 긍정 확언을 해도, 자기 연민을 연습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되거나,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라면 전문가 상담을 고려해보자. 심리 상담은 약한 사람이 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받는 거다.
참고자료
- Do Positive Affirmations Really Work? A Psychologist Explains The Science – ScienceAlert
- Madeleine Fraser (2026). The Conversation. 긍정 확언의 효과와 한계에 대한 67개 연구 리뷰 분석
- Wood et al. (2009). Psychological Science. 자존감 수준에 따른 긍정 확언 효과 연구
※ 면책 조항
이 글은 심리학 연구를 바탕으로 한 정보 제공 목적이며, 전문적인 심리 상담이나 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지속적인 우울감이나 심리적 어려움이 있다면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