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전날 밤새워 공부하는 당신, 사실 뇌를 더 망가뜨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나?
중요한 시험이나 발표를 앞두고 커피를 끼고 살면서 밤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간이 부족하니까 잠 시간을 줄여서라도 더 공부해야지”라는 생각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최근 뇌과학 연구 결과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야말로 가장 비효율적인 학습법일 수 있다.
실제로 30대인 나도 대학교 때는 시험 기간이면 으레 밤을 새우곤 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밤샘 공부한 다음 날 머리가 멍해져서 실수를 연발했던 기억이 더 선명하다. 정말로 밤샘 공부가 효과적일까?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번 파헤쳐보자.
뇌는 잠들어야 진짜 공부를 시작한다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뇌는 결코 쉬지 않는다. 오히려 그날 배운 내용들을 정리하고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기억 공고화(memory consolidation)’ 작업에 몰두한다. Psychology Today에 실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과정이 없으면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기억에 제대로 남지 않는다는 게 밝혀졌다.
특히 흥미로운 건 수면이 약하게 학습된 기억을 우선적으로 강화한다는 점이다. 단어 쌍을 60% 정도 기억하는 수준으로 학습한 참가자들이 수면 후 가장 큰 향상을 보였다. 반면 이미 완벽하게 외운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즉, 완벽하지 않게 공부한 내용일수록 수면을 통해 더 확실하게 기억에 남는다는 얘기다.

잠은 정보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마법사
더 놀라운 건 수면이 단순히 기억을 저장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한 연구에서 참가자들에게 가상의 장소들 간의 위치 관계를 가르쳐줬다. 예를 들어 “커피숍이 마트 서쪽에 있고, 도서관이 커피숍 서쪽에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잠을 잔 그룹은 단순히 배운 내용을 더 잘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직접 가르쳐주지 않은 관계까지 추론해냈다. 즉, “마트가 도서관 동쪽에 있다”는 걸 스스로 알아낸 것이다. 밤새 깨어있던 그룹은 이런 추론 능력을 보이지 못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베개 맡에 두고 자면 다 외워진다”거나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문제가 풀렸다”고 말하는 이유다. 정말로 수면 중에 뇌가 점들을 연결해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거다.
밤샘의 과학적 부작용들
그렇다면 밤샘 공부는 정말 효과가 없을까? KAIST 연구팀의 실험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24시간 잠을 자지 않은 상태에서도 단기적으로는 학습이 가능했지만, 장기 기억으로의 전환에는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수면 부족 상태에서는 해마(hippocampus)의 활동이 현저히 떨어진다. 해마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핵심 부위인데, 여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리 공부해도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마치 USB 포트가 고장 난 컴퓨터에 파일을 옮기려고 하는 것과 같다.
또한 수면 부족은 집중력과 판단력을 크게 떨어뜨린다. 3-6.5시간만 자고 공부한 그룹은 7-11시간 잔 그룹에 비해 기억 형성 능력이 현저히 낮았다. 게다가 피로 누적으로 인해 실수가 잦아지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져 오히려 학습 능력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감정과 보상이 기억을 살린다
수면이 기억에 미치는 또 다른 흥미로운 효과는 감정적으로 중요한 정보나 보상과 연결된 정보를 우선적으로 처리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달달 외우기만 하는 것보다 “이걸 알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거나 “이 내용이 정말 흥미롭다”는 감정을 함께 가지고 공부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이는 실제 공부 전략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중요한 내용일수록 왜 이걸 배워야 하는지, 내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지를 먼저 생각해보고 공부하면 수면 중에 뇌가 이 정보를 더 우선적으로 처리해준다.
기억을 방해로부터 보호하는 수면의 힘
수면의 또 다른 놀라운 기능은 기억을 간섭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A-B 단어 쌍을 먼저 학습시킨 다음, 일부는 잠을 자게 하고 일부는 깨어있게 했다. 그 다음에 같은 A 단어와 다른 C 단어를 연결한 새로운 쌍을 학습시켰다.
결과는 확실했다. 잠을 자지 않은 그룹은 새로운 A-C 학습 때문에 원래 배웠던 A-B를 잘 기억하지 못했다. 반면 수면을 취한 그룹은 새로운 학습에도 불구하고 기존 기억을 훨씬 잘 유지했다. 수면이 기억을 더 안정적이고 견고하게 만들어준 셈이다.
효과적인 학습을 위한 수면 전략
그렇다면 어떻게 수면을 활용해 학습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까? 몇 가지 실용적인 팁을 소개한다.
학습 후 최소 7-8시간 수면이 가장 기본이다. 연구에 따르면 7시간 미만의 수면으로는 충분한 기억 공고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깊은 잠(서파 수면) 시간이 중요한데, 이 시간 동안 뇌파가 동조화되면서 기억이 효과적으로 정리된다.
잠들기 전 복습도 효과적이다. 자기 직전에 그날 배운 내용을 가볍게 훑어보면 수면 중에 우선적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단, 너무 깊게 공부하면 각성 상태가 되어 잠들기 어려우니 가볍게만 하는 게 좋다.
규칙적인 수면 패턴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면 뇌가 수면 중 기억 처리 작업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주말에 몰아서 자는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실적인 밤샘 공부 대안
그렇다고 해서 시험 전날 밤에 아무것도 안 하고 일찍 자라는 건 아니다. 정말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다음과 같은 전략을 써보자.
분산 학습이 가장 효과적이다. 하루에 10시간씩 3일 공부하는 것보다 하루 6시간씩 5일에 걸쳐 공부하면서 매일 충분히 자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수면을 통한 기억 공고화가 여러 번 일어나기 때문이다.
정말 어쩔 수 없이 늦게까지 공부해야 한다면 30분 정도의 짧은 낮잠을 활용해보자. 오후 1-3시 사이의 파워 낮잠은 밤 수면의 일부 효과를 대체할 수 있다. 단, 30분을 넘기면 깊은 잠에 빠져서 깨어나기 어려우니 주의하자.
과학이 증명한 바에 따르면, 밤새 공부하는 건 마치 구멍 뚫린 양동이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 아무리 많이 부어도 결국 다 새어나간다. 반면 충분한 수면과 함께하는 학습은 양동이 구멍을 막고 물을 붓는 것과 같다. 같은 양의 노력으로도 훨씬 많은 걸 담아둘 수 있다.
이제 시험 전날 밤에 무엇을 할지 선택하는 건 당신의 몫이다. 과학적 근거를 무시하고 밤새 끙끙대며 공부할 건가, 아니면 뇌의 자연스러운 학습 메커니즘을 믿고 충분한 수면을 취할 건가? 선택은 명확하다. 제대로 자고, 제대로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