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는 사람의 공통점을 찾는 연구는 수도 없이 많다. 식단, 수면, 운동량, 스트레스 관리. 그런데 버팔로대 연구팀이 5천 명 데이터에서 찾아낸 단서는 훨씬 단순했다. 손아귀로 무언가를 쥐는 힘이었다.
운동량도, 심장 건강도 아닌 악력이 수명을 예측한다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인가?
5천 명을 8년간 지켜본 연구가 찾아낸 것
버팔로대 연구팀은 63세에서 99세 사이 여성 5,000명을 8년간 추적했다. 2026년 JAMA Network Open에 발표된 이 연구는 노년 여성만을 대상으로 근력과 장수 사이의 관계를 독립적으로 분석한 역대 최대 규모다.
연구자들이 선택한 측정 항목은 두 가지였다. 악력과 의자에서 5회 앉았다 일어서기다. 거창한 장비가 필요 없다. 손아귀 힘과 일어서는 속도만 봤다.
심장 건강, 활동량, 혈중 염증 수치를 모두 보정한 뒤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근력이 강한 사람은 다른 조건이 같아도 더 오래 살았다. 수석 연구자 마이클 라몬테 박사는 Science Daily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근력은 중력을 거슬러 몸을 이동시키는 능력과 직결된다.”
이번 연구가 이전 연구들보다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 기존 연구들은 활동량, 심장 건강, 염증 같은 변수와 근력이 뒤섞여 있어 근력 단독의 영향력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이번 연구는 그 장벽을 처음으로 명확히 넘었다.
악력 1kg의 무게
수치가 구체적이다. 악력이 약 6.8kg(15파운드) 증가할 때마다 8년간 사망 위험은 약 12% 낮아졌다. 단순 환산하면 악력 1kg 증가마다 사망 위험 약 1.8% 감소다.
작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8년이라는 시간 축 위에선 다르다. 서울 40대 직장인 두 명이 있다고 하자. 나머지 생활 방식이 동일하더라도, 한 명의 악력이 상대보다 약 7kg 강하다면 8년 사망 위험은 12% 차이가 난다. 같은 나이, 같은 직장, 비슷한 건강검진 결과인데도 말이다.
여기서 잠시 악력 측정에 대해 알아보자. 악력계는 동네 피트니스센터나 지역 보건소에서 쉽게 측정할 수 있다. 60대 한국 여성의 평균 악력은 약 20~25kg 수준이다. 자신의 수치가 또래 평균보다 현저히 낮다면, 이번 연구는 단순한 건강 참고치가 아니라 경보 신호에 가깝다.
의자에서 일어서는 속도도 수명을 말한다
연구팀의 두 번째 지표가 있다. 의자 앉았다 일어서기 5회다. 판교나 여의도 사무실에서 하루 8시간 앉아 일하다가 퇴근하는 사람이라면 오늘 저녁 바로 측정해볼 수 있다.
결과는 단호했다. 같은 동작을 6초 더 빨리 수행한 사람은 사망률이 4% 낮았다. 불과 6초다. 그 6초의 차이가 8년 추적 연구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격차를 만들었다.
악력과 의자 기립 속도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중력을 거슬러 몸을 움직이는 힘이 기저에 있다는 것이다. 악력은 팔과 전완 근육, 의자 기립은 하지와 코어 근육이 담당한다. 두 지표가 동시에 약해진다는 건 몸 전체의 근력이 함께 감소하고 있다는 신호다.
근력이 장수 예측 인자인 진짜 이유
근육은 단순히 힘을 내는 기관이 아니다. 근육은 포도당 대사, 염증 억제, 면역 기능에 모두 관여한다. 근력이 약해진다는 건 이 시스템들이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축구 팀에 비유하면 이렇다. 스트라이커의 결정력 하나만 떨어지는 게 아니다. 수비 압박, 전환 속도, 경기 후반 체력까지 팀 전체가 흔들린다. 악력이라는 단일 숫자가 몸 전체의 ‘시스템 건강’을 반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라몬테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 근력을 “노년 여성의 생존력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라 표현했다. 지금까지 장수 연구에서 근력은 식단이나 심장 건강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이 연구는 그 그늘을 걷어냈다.
오늘부터 할 수 있는 것
헬스장을 당장 등록하지 않아도 된다. 작게 시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 악력 훈련: 테니스 공이나 악력기를 하루 10~15분 쥐었다 펴기.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도 가능하다
- 의자 스쿼트: 식탁 의자에서 앉았다 천천히 일어서기 5회, 하루 3세트. 무릎에 무리 없이 할 수 있다
- 계단 이용: 강남역이나 홍대입구 환승 계단, 에스컬레이터 대신 걷기. 하지 근력에 직접적으로 자극이 된다
근력 훈련의 효과는 노년에도 분명히 나타난다. 70대에 시작한 저항 운동도 근육량을 유의미하게 높인다는 연구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시작이 늦었다는 생각은, 적어도 근육 앞에선 유효하지 않다.
결국 노화란 서서히 쥐는 힘을 잃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속도는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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