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가 갑자기 훅 오는 나이, 44세와 60대

며칠 전엔 멀쩡히 오르던 사무실 계단인데, 오늘따라 유독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적이 있는가. 회식 자리에서 늘 마시던 소주 두 잔에 갑자기 얼굴이 벌게지고, 저녁에 마신 커피 한 잔 때문에 밤새 뒤척이는 날이 잦아졌다면. 기분 탓이 아닐 수 있다.

노화는 세월과 함께 조금씩, 서서히 진행된다고 흔히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연구는 이 통념을 완전히 뒤집는다. 몸은 평생 고르게 늙는 게 아니라, 인생에서 딱 두 번, 계단을 오르듯 급격하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 유전학자 마이클 스나이더(Michael Snyder) 교수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네이처 에이징'(Nature Aging)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그 변곡점은 44세 전후와 60대 초반이다.

노화는 완만하지 않다 — 108명, 626일 추적한 결과

스나이더 교수팀은 108명의 성인을 평균 626일 동안 추적하며, 각자 평균 47회씩 생체 샘플을 제공받았다. 가장 오래 참여한 사람은 367회나 샘플을 냈다. RNA, 단백질, 지질, 그리고 장·피부·코·구강의 미생물군까지 총 13만 5,239개 생물학적 지표를 분석했고, 그 결과 쌓인 데이터는 2,460억 개가 넘었다.

“우리는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변하는 게 아닙니다. 정말 극적인 변화들이 있습니다.” 스나이더 교수는 연구 발표 당시 이렇게 설명했다. “40대 중반은 극적인 변화의 시기이고, 60대 초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종류의 분자를 들여다보든 이 사실은 똑같이 나타났습니다.”

분석 결과, 연구팀이 살펴본 분자의 81%가 이 두 시기 중 한 곳, 또는 두 곳 모두에서 뚜렷한 변화를 보였다. 노화가 매끈한 내리막이 아니라, 두 번의 급경사로 이뤄진 계단이라는 뜻이다.

44세 전후,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첫 번째 변곡점인 44세 전후에는 지질대사, 카페인·알코올 대사, 심혈관 기능, 피부와 근육 관련 분자가 한꺼번에 요동친다. 예전엔 아무렇지 않던 술 한두 잔에 유독 취기가 빨리 오르거나, 저녁 커피 한 잔에도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면 이 시기의 대사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지질대사가 흔들리면 콜레스테롤 수치 관리가 예전만큼 쉽지 않아지고, 심혈관 관련 분자의 변화는 이 나이대부터 건강검진에서 혈압·혈관 지표를 더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피부와 근육 기능 관련 분자의 급변도 같은 시기에 몰려 있다.

60대 초반, 두 번째 변곡점의 정체

두 번째 변곡점인 60대 초반에는 탄수화물·카페인 대사, 심혈관 기능, 피부·근육, 면역조절, 신장 기능과 관련한 분자들이 함께 급변한다. 밥이나 면 같은 탄수화물을 먹었을 때 몸이 반응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혈당 관리에 그동안보다 더 신경 써야 하는 시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면역조절과 신장 기능 관련 분자의 변화가 이 시기에 함께 나타난다는 점도 눈에 띈다. 감염에 대한 회복력이나 만성질환 관리 방식을 이 무렵부터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44세 변화, 여성 갱년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44세 전후의 급격한 변화라고 하면 흔히 여성의 갱년기·폐경전후기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연구팀은 이를 주요 원인에서 제외했다. 같은 나이대의 남성에게서도 여성과 유사한 수준의 분자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연구의 제1저자이자 대사체학자인 셴샤오타오(Xiaotao Shen, 전 스탠퍼드·현 싱가포르 난양공대) 연구원은 “갱년기나 폐경전후기가 40대 중반 여성에게서 관찰되는 변화에 기여할 수는 있지만, 남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더 중요한 다른 요인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요인을 밝혀내는 것이 앞으로의 연구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연구팀 스스로도 한계를 인정한다. 표본이 108명으로 많지 않고, 조사 대상도 25~70세로 제한적이었다. 44세와 60대 초반에 왜 하필 이런 급변이 몰리는지,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 결과가 주는 실천적 시사점은 분명하다. 44세와 60대 초반을 앞두고 있다면, 그 시기를 몸이 보내는 신호를 한 번 점검해볼 타이밍으로 삼을 만하다. 평소보다 술이 유독 힘들어지거나, 탄수화물을 먹은 뒤 컨디션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진다면 이는 자연스러운 변화의 신호일 수 있다. 정확한 원인은 앞으로의 연구가 밝혀내야겠지만, 그 전까지는 이 두 시기를 건강검진과 생활습관을 다시 점검하는 계기로 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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