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판타시아, 머릿속 이미지가 없는 인구 4%

오늘 아침을 상상해보십시오. 커피잔의 패턴. 토스트 위에 녹는 버터. 그 장면이 눈앞에 그려집니까.

대부분은 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약 4%는, 아무리 노력해도 머릿속에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냥 어둡습니다. 이걸 아판타시아(aphantasia)라고 부릅니다. 더 놀라운 건, 이 사람들의 뇌를 스캔해보면 시각피질이 멀쩡히 켜진다는 겁니다. 뇌는 이미지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식이 볼 수가 없는 겁니다.

마음의 눈이 없는 사람들의 뇌를 탐구하는 연구 일러스트
이미지 출처: Nature

눈을 감으면 무엇이 보입니까

아판타시아가 있는 사람들은 보통 이걸 스스로 잘 모릅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와 같다고 생각하니까요.

시드니대학교 맥 샤인 교수는 2013년에야 자신이 그렇다는 걸 알았습니다. 동료들과 뇌 연구를 하다가 심상의 선명도를 이야기하던 중이었습니다. 그가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자, 동료들이 어리둥절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서로가 서로를 이상하게 봤습니다. 그게 둘 다 틀리지 않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에든버러대학교 아담 제만 교수는 2015년 Cortex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현상에 공식 이름을 붙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마음의 눈을 뜻하는 말로 쓴 ‘phantasia’ 앞에 ‘a-‘를 붙였습니다. 이 논문 이후 제만 교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온 사람이 지금까지 2만 명이 넘습니다.

아판타시아는 스펙트럼입니다. 반대편에는 눈을 감으면 너무 선명하게 보이는 과잉심상증(hyperphantasia)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뇌는 멀쩡한데 왜 안 보일까

연구자들이 처음에 예상한 건 시각피질의 차이였습니다. 무언가를 상상할 때 시각피질이 활성화된다는 건 알려진 사실입니다. 아판타시아가 있으면 이 부분이 다를 거라 생각한 거죠.

그런데 아닙니다.

연구 결과를 보면, 아판타시아가 있는 사람들도 뭔가를 상상하려 할 때 시각피질이 비슷하게 활성화됩니다. UCL의 줄리아 카바이 연구팀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참가자들에게 개 짖는 소리를 들려주었을 때, 시각피질에 ‘개’에 대한 표상이 생겼습니다. 아판타시아가 있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뇌 안에는 분명히 뭔가가 있었습니다. 의식이 그걸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일상은 그래도 돌아갑니다

이게 참 이상한 겁니다.

심상에 의존한다고 알려진 인지 과제들 — 물체를 머릿속으로 회전시키기, 기억 회상, 공간 추론 — 을 아판타시아가 있어도 대체로 잘 해냅니다. 샤인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운동도 하고, 뇌 다이어그램도 그립니다. 그런데 ‘공 위에서 저글링하는 보라색 공룡’을 상상해보라 하면 아무것도 안 나타납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방법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있는 겁니다.

참고로 Nature의 보도에 따르면, 형제나 남매 중 아판타시아가 있으면 본인도 해당될 확률이 10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판타시아는 예술 분야보다 과학·기술 직군에서 더 흔하게 나타납니다. (저도 이걸 읽고 잠깐 제 직업을 생각해봤습니다만…)

마음의 눈 없이도 의식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의식 연구자들이 아판타시아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뇌 활동과 주관적 경험 사이의 간극 — 무언가 처리는 되는데 ‘느낌’이 없는 상태 — 이걸 실제 사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카바이 팀은 아판타시아를 이중 문제로 설명합니다. 무의식적 표상은 만들어지지만, 첫째로 그게 의식에 올라오지 않고, 둘째로 자발적으로 생성하려 해도 잘 안 된다는 겁니다. 둘 다 안 되는 겁니다.

결론은, 뇌가 이미지를 만드는 것과 우리가 그걸 의식적으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겁니다. 이게 의식 연구에서 풀려는 오래된 질문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지금 한번 해보십시오. 눈을 감고 빨간 사과를 떠올려 보십시오. 선명하게 그려집니까. 흐릿합니까. 아니면 그냥 어둡습니까. 그 답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우리는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뇌는 원래 우리가 모르는 일을 훨씬 많이 하고 있습니다.

김노마

🧠 뇌과학자. 습관연구가.
뇌과학과 행동경제학을 연구한다. 책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즐긴다. 자기계발과 라이프해킹 관련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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