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에게 쇼펜하우어를 물으면 5분 안에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핵심을 정리해준다. 배터리 원리를 물으면 전문 교재보다 훨씬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자동차 스태빌라이저 바의 역할도, 일본의 총기 규제 역사도, 캘리포니아 고속도로 표지판 서체 이야기도. 무엇이든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다음 날 친구에게 다시 설명하려고 하면 입이 안 열린다. 정보는 들어왔는데 지식이 남지 않았다.
ChatGPT가 바꿔놓은 지식의 풍경
2022년 이전, 지식에는 장벽이 있었다. 책을 사야 했고, 도서관에 가야 했고, 전문가에게 물어야 했다. LLM이 등장한 뒤 그 장벽은 거의 사라졌다. 이제는 어느 철학자의 사상도, 어느 과학 분야의 기초도, 아이의 끝없는 “왜” 질문에 대한 답도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다.
이건 분명 좋은 일이다. 인터넷 발명만큼이나 큰 변화다. 세계의 지식 불평등을 줄이는 데도 기여한다. 20년째 책장에서 먼지만 쌓이던 철학 고전을 드디어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쓸수록 이상한 기분이 든다. 아는 게 많아진 것 같은데, 아무것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정보를 얻었는데 지식이 없다
한 블로거가 흥미로운 실험을 공유했다. 2022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피격됐을 때, 그는 직접 위키피디아, 일본어 포럼 번역본, 공식 문서를 수주에 걸쳐 읽었다. 결론은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사회와 총기 문제에 대해 훨씬 풍부한 맥락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같은 질문을 ChatGPT에 던지면 깔끔한 답변이 나온다. 정확하고, 뉘앙스도 있고, 추가 질문도 유도한다. 그리고 그걸 읽은 뒤엔 만족감과 함께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두 경험의 차이는 결과물의 품질이 아니다. 얼마나 깊이 흡수됐는가의 차이다. LLM은 학습의 마찰을 제거해준다. 그런데 바로 그 마찰이 지식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책을 LLM으로 요약해서 “읽으면” 그 내용을 직접 읽은 것과는 전혀 다르다. 지식은 얕고 금방 사라진다. 소셜미디어 피드처럼 스크롤해서 소비하고 넘어가는 구조와 본질적으로 같다.
여기서 핵심 질문이 생긴다. 마찰을 없애준다는 게 좋은 일이라면, 그 마찰이 학습의 본질이었다면 어떻게 되는가.

여기서 잠시: ‘바람직한 어려움’에 대해 알아보자
UCLA 심리학과 로버트 비요크 교수는 이걸 “desirable difficulties(바람직한 어려움)”라고 부른다. 학습에서 어려움이 있어야 기억이 형성된다는 이론이다.
간격을 두고 반복하면(spacing effect) 단번에 몰아서 외우는 것보다 더 오래 기억된다. 정답을 받는 것보다 직접 생성해낼 때(generation effect) 기억이 강화된다. 읽기 어려운 폰트가 술술 읽히는 텍스트보다 오히려 이해를 높인다는 연구도 있다. 공통점이 하나 있다. 노력이 들어갈수록 더 잘 기억된다는 것이다.
ChatGPT는 그 노력을 대신 해준다. 정보를 소화하고 구조화하고 제시하는 것을 AI가 다 처리한다. 그래서 빠르고, 그래서 기억이 안 남는다. 우리 뇌는 어렵게 얻은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도록 설계돼 있다. 쉽게 얻으면 쉽게 잊는다.
더 큰 문제도 있다. 할루시네이션, 즉 AI가 자신 있게 틀린 답을 내놓는 경우다. 이걸 알아채는 건 이미 그 분야를 알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 내가 모르는 분야를 배우려고 AI를 쓰는 순간, 틀린 정보를 받아도 맞다고 믿게 된다. 지식이 없으면 틀린 지식을 걸러낼 수도 없다.
AI를 진짜 공부 도구로 쓰는 3가지 방법
AI를 활용해 깊이 배우는 건 가능하다. 단, 방법이 다르다.
요약기가 아닌 질문 생성기로 쓴다. “이 내용을 요약해줘”가 아니라 “이 내용으로 나를 시험해줘”라고 요청한다. 직접 떠올리고 대답하는 과정, 즉 인출 연습(retrieval practice)이 기억 형성에 관여한다. 학습과학 연구들은 일관되게 인출 연습이 단순 반복 읽기보다 기억 보유에 더 효과적이라고 밝힌다.
배운 내용을 자신의 말로 설명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ChatGPT에게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 봐줘”라고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가 명확해진다. 막연하게 알 것 같던 것들이 얼마나 흐릿했는지 드러난다.
원문과 병행한다. AI 요약만 읽지 말고, 원문 텍스트나 1차 자료를 적어도 부분적으로 직접 읽는다. 마찰을 의도적으로 되살리는 것이다. 느리지만 그 느림이 학습의 본질이다. 배터리를 ChatGPT로 배울 수 있다. 그런데 Battery University 페이지를 한 단락씩 읽어나가며 직접 질문을 만들어보는 것과는 다르다.
헬스장에서 기계가 대신 무게를 들어준다면, 근육은 생기지 않는다. AI가 대신 생각해준다면, 뇌에 새겨지는 것도 없다.
ChatGPT는 정보를 빠르게 전달해준다. 하지만 당신의 뇌에 새기는 건, 결국 당신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