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울제 효과 없던 우울증, 케타민 치료가 다른 이유

전쟁터 마취제로 시작해 60년 뒤 정신건강 클리닉에 들어온 약이 있다. 바로 케타민이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이게 맞나?” 했다. 그런데 여러 항우울제를 써봐도 나아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케타민은 수 시간 안에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어떻게 가능한 걸까.

항우울제, 왜 어떤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을까

우울증 치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약은 SSRI, 즉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다. 세로토닌이 뇌세포 사이에 더 오래 머물도록 해서 기분을 안정시키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약이 상당수 환자에게는 충분한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거다. 두 가지 이상의 항우울제를 써봤는데도 나아지지 않으면, 의학에서는 이걸 ‘치료 저항성 우울증(TRD, Treatment-Resistant Depression)’이라고 부른다.

게다가 SSRI는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보통 4~6주가 걸린다. 심각한 우울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6주는 너무 긴 시간이다. (진짜로.)

세로토닌만 건드려서는 못 넘는 벽이 있다는 게 점점 명확해졌고, 연구자들은 다른 시스템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출발점이 된 연구가 1990년대 말 예일대에서 나왔다. 수술용 용량보다 훨씬 낮은 양의 케타민이 만성 우울 증상을 빠르게 완화시킨다는 거였다.

뇌를 고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케타민은 세로토닌이 아닌 글루타메이트 시스템을 타깃으로 한다. 글루타메이트는 뇌 시냅스 연결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핵심 신경전달물질이다. 케타민은 NMDA 수용체를 차단하고 AMPA 수용체를 활성화해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이 작용이 세로토닌 모델보다 훨씬 빠르게 전개되기 때문에, 투여 직후부터 인지적 변화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더 흥미로운 건 뇌의 물리적 구조에도 직접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만성 우울증과 극심한 스트레스는 뇌세포의 ‘가지’, 즉 수상돌기를 실제로 위축시킨다. 나무에서 잔가지들이 말라가는 것처럼. 케타민은 이 위축된 연결을 다시 키우는 시냅스 생성(synaptogenesis)을 수 시간 안에 촉진한다. 기분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뇌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주는 셈이다.

심리학에서는 반추(rumination)라고 부르는, 부정적인 생각이 루프처럼 돌아가는 상태가 있다. 케타민은 이 상태와 관련 있는 ‘기본 모드 네트워크(DMN)’의 과잉 활성화를 일시적으로 억제한다. 머릿속 소음이 잠잠해지는 짧은 창문이 열리는 것이다. 상담실에서 보면 “뇌가 좀 조용해졌다”는 표현을 쓰는 분들이 있는데, 그게 정확히 이 효과를 묘사하는 거다.

치료 뒤 48시간, 이때가 진짜다

케타민 치료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여기다. 치료 이후 48~72시간 동안 뇌는 평소보다 훨씬 높은 가소성 상태에 놓인다. 뇌의 물리적 구조가 아직 재편되는 중이기 때문에, 이 시간에 들어오는 자극이 새 경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산책을 하거나, 일기를 쓰거나, 상담을 받거나 — 평소엔 그냥 흘려보냈을 경험들이 이 창문 안에서는 다르게 처리된다. 케타민이 치료를 완성하는 게 아니라, 치료가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케타민 단독으로 쓰는 것보다 심리 상담이나 인지행동치료와 병행할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연구들이 많다. 약이 뇌를 열어주면, 그 안에 뭘 넣느냐가 장기 회복을 결정하는 셈이다.

어떤 사람에게 케타민 치료가 도움이 될까

케타민 치료는 모두를 위한 범용 솔루션이 아니다. 주로 아래 상황에서 선택지가 된다.

치료 저항성 우울증 — 두 가지 이상 항우울제를 써봤지만 효과 없는 경우. 케타민이 글루타메이트 경로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뇌에 접근하기 때문에, 세로토닌 계열 약이 안 들었다고 케타민도 안 들 거라는 건 아니다.

불안장애·PTSD — 뇌의 공포 회로가 과활성화되어 기존 치료가 너무 버겁게 느껴지는 경우. 케타민이 DMN 활동을 일시적으로 낮춰주기 때문에, 이전엔 시도조차 못했던 노출 치료나 상담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자살 충동 위기 — 기존 항우울제는 충동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한 달 이상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케타민은 수 시간 안에 자해 충동을 낮추는 ‘빠른 구조’ 도구로 사용된다.

미국 FDA는 2019년 에스케타민 비강 스프레이(Spravato)를 난치성 우울증 치료제로 공식 승인했다. 현재는 정맥주사(IV), 근육주사(IM), 비강 스프레이, 설하 트로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투여된다.

케타민은 ‘마지막 수단’이 아니라 더 빠른 경로를 제공하는 도구라는 게 결론이다. 기존 치료가 길고 느린 길이라면, 케타민은 뇌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창문을 열어준다. 물론 그 창문에서 무엇을 할지는 여전히 본인과 치료자의 몫이다.

여러 항우울제를 시도해봤는데도 변화가 없다고 느낀다면, 케타민 치료를 전문의와 한번 상의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마침 정신건강 치료 선택지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고 있는 지금이, 그 질문을 꺼내기 좋은 타이밍일지도.

※ 면책 조항: 이 글은 정보 제공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케타민 치료는 반드시 전문 의료진의 평가와 처방 하에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수진

심리연구소에서 심리상담사 겸 콘텐츠 마케터로 일한다. 가끔 코딩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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