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인데 가끔 잔다. 연인은 아니지만 친밀감은 있다. 서로 자유롭고, 부담 없고, 간단해 보인다. 친구 이상 연인 미만, 이른바 ‘Friends with Benefits(FWB)’ 관계를 시작한 적 있지 않나?
처음엔 다들 이렇게 말한다. “우린 감정 안 생겨. 어른이잖아. 잘 알고 들어가는 거야.” 근데 여기서 반전이 있다. 심리학적으로 FWB는 절대 중립적이지 않다는 거다.
상담실에서 진짜 자주 듣는 얘기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요즘 자꾸 신경 쓰여요.” “연락 안 오면 불안하고, 다른 사람 만나는 것도 싫고요.” 그럼 난 묻는다. “처음에 감정 안 생긴다고 했었죠?” 그럼 고개를 끄덕인다. “네, 근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감정이 생기는 건 네 의지력이 약해서가 아니다.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정에 섹스를 더하면 간단할 것 같지만
FWB를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렇다. 친구 + 성관계 = 부담 없는 관계. 근데 심리학에서는 이걸 전혀 다르게 본다.
친밀한 관계 + 신체적 접촉 + 애매한 경계 = 애착 시스템 활성화
섹스는 단순한 신체 활동이 아니다. 신경과학적으로 보면, 친밀한 접촉은 옥시토신, 도파민, 바소프레신 같은 호르몬을 분비시킨다. 이 호르몬들이 뭐 하는 애들인지 아나? 애착 형성, 보상 회로, 감정 기억을 담당한다. 사랑에 빠지라고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그러니까 네가 “감정 안 생길 거야”라고 머리로 아무리 다짐해도, 뇌는 이미 다른 신호를 받고 있다는 거다.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성적 친밀감의 애착 역설(attachment paradox of sexual intimacy)”이라고 부른다. 몸은 애착을 만들고 있는데, 관계는 애착을 부정한다. 이 모순이 문제의 시작이다.
연구에 따르면, FWB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헌신적 관계에 있는 사람들보다 만족도가 낮고, 우정도 종종 희생된다고 한다. 친구는 유지하려고 시작한 관계인데, 정작 친구 관계가 가장 먼저 깨진다는 게 아이러니다.

감정 안 생길 거라고 믿는 이유
그럼 왜 사람들은 FWB를 선택할까? 솔직히 나도 그랬고, 주변에도 많았다. 동기를 들여다보면 꽤 흥미롭다.
1. 헌신에 대한 두려움
“관계 부담스러워. 근데 외로운 건 싫어.” 이런 마음 있지 않나? FWB는 친밀감은 얻으면서 책임은 회피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회피적 친밀감(avoidant intimacy)”이라고 한다. 가까워지고 싶지만, 가까워지는 게 무서운 거다.
2. 외로움 때리는 임시방편
친밀감, 신체적 애정, 검증받는 느낌. 이런 욕구는 인간의 기본 심리다. FWB는 이걸 장기 투자 없이 충족시켜주는 것처럼 보인다. 근데 여기서 함정이 있다. 욕구는 채워지지만, 안정감은 없다.
3. 전환기의 임시 정류장
이별 후 회복 중이거나, “지금은 관계 할 때가 아니야”라고 생각할 때. FWB는 과도기적 패턴으로 작동한다. 문제는, 이게 생각보다 길어진다는 거다. 임시로 시작했는데 1년, 2년 지나가 있다.
4. 비대칭적 기대
가장 흔하고 가장 아픈 경우다. 한쪽은 진짜 캐주얼하게 생각하는데, 다른 쪽은 “나중에 발전하겠지”라고 은근히 기대한다. 상담실에서 보면 이 패턴이 정말 많다. 한 사람은 룰을 지키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룰이 바뀌길 바라고 있다.
애착 유형이 결과를 결정한다
사실 이건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FWB 상황이라도, 애착 유형(attachment style)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회피형 애착
자율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정서적 의존을 불편해한다. 이런 사람들은 FWB를 이상적으로 느낄 수 있다. 친밀감은 있지만 속박은 없으니까. 근데 문제가 있다. 자기는 감정 신호를 안 보낸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거다. 회피형 사람도 무의식적으로 애착 신호를 보낸다.
불안형 애착
불안형 애착은 FWB에서 가장 위험하다. 불안형은 빨리 감정이 생기고, 관계가 발전하길 바라고, 거절에 예민하다. 처음엔 “나도 가볍게 즐길 수 있어”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 반추, 거절 민감성이 폭발한다. 심리학 연구에서도 불안형 애착을 가진 사람이 FWB에서 가장 고통받는다고 나온다.
안정형 애착
안정형 애착이 가장 안전하긴 하다. 명확한 경계를 세우고, 솔직하게 소통하고, 감정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으니까. 근데 안정형이라고 면역이 있는 건 아니다. 리스크가 낮을 뿐, 제로는 아니다.
감정이 생기는 건 버그가 아니다
상담하다 보면 이런 말 진짜 많이 듣는다. “감정 생기지 말아야 하는데…” “내가 약한 건가?” 아니다. 감정이 생기는 건 실패가 아니다. 정상 작동이다.
왜 그럴까? 반복되는 신체적 접촉, 감정적 친밀감, 성적 보상. 이 세 가지가 합쳐지면 뇌는 애착을 만들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건 자기 통제의 문제가 아니다. 생물학이다.
진짜 문제는 여기 있다. 대부분의 FWB 관계는 “감정이 생기면 어떡하지?”에 대한 플랜이 없다. 그냥 “안 생길 거야”라고 믿고 시작한다. 그래서 감정이 생기면 당황하고, 숨기고, 혼자 삭이다가 폭발하거나 상처받는 거다.
권력 불균형도 숨어 있다. FWB 관계에는 보통 한쪽이 더 쉽게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더 대안이 많거나, 감정적으로 덜 투자했거나, 더 자신감 있는 쪽. 다른 쪽은 무의식적으로 보상한다. “너무 많이 요구하면 안 되지”, “쿨하게 굴어야지”, “화내면 떠날 거야”. 이런 생각이 자존감을 깎는다.
질투도 마찬가지다. “우린 exclusive 아니잖아. 다른 사람 만나도 괜찮아.” 처음엔 이렇게 말한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 질투가 생긴다. 질투는 약점이 아니다. 애착이 형성되었다는 정보다.
이럴 땐 해도 괜찮고, 이럴 땐 위험하다
그럼 FWB는 절대 하면 안 되는 걸까? 아니다. 드물지만, 특정 조건에서는 괜찮을 수 있다.
작동하는 경우:
- 진짜로 감정적 거리가 있을 때 (연기 아니고 진짜)
- 둘 다 비슷한 애착 유형일 때 (특히 둘 다 안정형 또는 둘 다 회피형)
- 명확한 합의가 있을 때 (“감정 생기면 이렇게 하자”까지 포함)
- 시간 제한이 있을 때 (예: 지리적 거리, 인생 전환기)
- 서로가 주요 정서적 지지 체계가 아닐 때
이런 경우에도, 많은 사람들이 “만족스럽다”보다는 “중립적이다”라고 말한다. 나쁘진 않은데, 채워지는 느낌도 아니라는 거다.
위험 신호:
- 만난 후에 불안한가?
- 내 욕구를 억누르고 있나?
- 대체 가능한 느낌이 드나?
- 사실 관계로 발전하길 바라고 있나?
- 이 관계 시작한 후 자존감이 떨어졌나?
여러 개 해당된다면, 이 관계는 너한테 이득보다 손해를 주고 있는 거다.
결국 중요한 건 이거다
FWB가 나쁜 건 아니다. 근데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거다. “이 관계가 내가 원하는 감정적 삶을 지지하고 있나?”
대답이 “아니오”라면, 그 답을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 쿨하게 보이려고, 유연해 보이려고, 편하게 굴려고 자기 감정을 배신하지 마. 감정적 정직함이 감정적 애매함보다 항상 안전하다.
친밀감은 있는데 돌봄이 없다면, 그건 자유가 아니다. 편의일 뿐이다.
참고자료
- Friends with benefits: What no one tells you about catching feelings – Thoughts on Life and Love
- Bisson & Levine (2009). “Negotiating a Friends with Benefits Relationship” – 심리학 연구
- Attachment theory and casual relationships – 애착 이론과 비공식 관계
※ 면책 조항
이 글은 일반적인 심리학 정보를 제공하며, 전문적인 심리 상담이나 치료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관계에서 심각한 고통을 느끼거나 정신 건강 문제가 의심된다면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