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 저하, 뇌가 아니라 장에서 시작된다는 4,275명 연구

인지 기능 저하를 막겠다고 뇌 훈련 앱을 켜고, 오메가-3를 챙깁니다. 뇌에 좋다는 건 뇌에서 해결하려 하죠. 그런데 15개 임상 연구를 종합한 최신 리뷰, 총 4,275명의 데이터가 가리킨 곳은 머릿속이 아니었습니다. 장(腸)이었습니다.

우리가 뇌 건강을 위해 뇌만 봤던 이유

오래전부터 뇌는 독립된 기관으로 여겨졌습니다. 기억이 흐릿해지면 뇌가 문제, 집중이 안 되면 뇌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죠.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뇌는 혼자 일하지 않습니다.

장 속에는 약 1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이걸 ‘제2의 뇌’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이 두 뇌 사이에는 ‘장-뇌 축(gut-brain axis)’이라 불리는 양방향 통신 채널이 있습니다. 장에서 일어나는 일이 뇌에 영향을 주고,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 장에 영향을 줍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 경로를 통해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출 수 있다는 연구들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꽤 묵직한 리뷰 논문이 나왔습니다.

4,275명 추적 연구가 발견한 것

이탈리아와 스페인 연구팀이 2012년부터 2025년까지 발표된 15개 임상 연구를 종합했습니다. 대상은 유럽·아시아·북미·중동의 45세 이상 성인 4,275명. 치매, 인지 장애, 인지 저하 위험이 높은 사람들에게 장 마이크로바이옴에 개입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지중해식 식단, 케토 다이어트, 오메가-3 보충 같은 간접적 방법도 있었고, 프로바이오틱스·프리바이오틱스·대변 이식(FMT) 같은 직접적 방법도 있었습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장에 개입한 그룹은 기억력, 실행 기능, 전반적 인지 능력 모두에서 개선을 보였습니다. 특히 초기 또는 경증 인지 장애 단계에서 효과가 가장 컸습니다. 반대로 알츠하이머가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효과가 제한적이었습니다. 장 개입에도 타이밍이 있다는 뜻입니다.

마이크로바이옴과 뇌 연구 개요
이미지 출처: ScienceAlert

어떤 방법이 얼마나 통했나

세 가지 방향으로 나뉩니다.

식단 개입이 가장 접근하기 쉽습니다. 올리브유나 견과류를 곁들인 지중해식 식단을 섭취한 그룹은 저지방 식단 그룹보다 인지 점수가 유의미하게 높았습니다. 장내 유익균이 늘고 신경 보호 효과가 있는 단쇄지방산 생성이 증가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리바이오틱스는 여러 소규모 무작위 대조 시험에서 기억력, 실행 기능, 언어 유창성을 개선했습니다. 장내 미생물 다양성을 높이고 신경전달물질 경로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편이지만, 안전성은 높습니다.

대변 이식(FMT)은 아직 실험적 단계입니다. 그러나 이번 리뷰에서 가장 극적인 결과를 냈습니다. 알츠하이머 환자 5명이 단 1회 이식 후 기억력·집중력·문제 해결 능력 테스트에서 개선을 보였습니다. 연구팀은 “FMT가 다른 방법보다 더 빠르고 강력하게 미생물 구성을 바꾼다”고 분석했습니다. 장기 안전성은 아직 불확실하지만, 방향성은 흥미롭습니다.

지금 당장 장을 챙기는 현실적인 방법

FMT는 병원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케토 다이어트는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뭘까요.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제안하는 방향은 하나입니다. 장내 미생물 다양성을 높이는 것. 구체적으로는 이렇습니다:

  • 올리브유, 견과류, 채소·과일 위주의 식단 (지중해식 접근)
  • 요거트, 김치, 된장 같은 발효식품을 꾸준히 섭취 (프로바이오틱스 공급)
  • 식이섬유를 충분히 먹는다 (유익균의 먹이인 프리바이오틱스 역할)
  • 설탕과 초가공식품을 줄인다 (장 누수와 염증의 주요 원인)

최근 쌍둥이 연구에서도 식물성 섬유질 프리바이오틱스가 노인의 뇌 기능을 향상시킨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실험실 결과가 아니라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결론은 이겁니다. 인지 기능 저하를 예방하려면 뇌보다 장을 먼저 챙겨야 할 수 있습니다. 연구는 아직 예비 단계지만, 4,275명이라는 규모와 15개 임상 연구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알츠하이머가 진행된 뒤에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점도 분명히 확인됐습니다. 지금 장을 챙기는 게 10년 뒤 뇌를 챙기는 일일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 식사, 조금 더 신경 써보시길.

※ 면책 조항: 이 글은 일반적인 건강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인지 기능 저하가 우려되는 경우 반드시 전문 의료인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김노마

🧠 뇌과학자. 습관연구가.
뇌과학과 행동경제학을 연구한다. 책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즐긴다. 자기계발과 라이프해킹 관련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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