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교과서는 다각화를 가르칩니다. 리스크를 분산하고, 한 사업이 흔들릴 때 다른 사업으로 자원을 이동시키는 유연성이 기업의 경쟁력이라고 말하죠. 그런데 Academy of Management Review에 발표된 최신 연구는 이 통념에 반기를 듭니다. 승자독식 시장에서는 그 유연성 자체가 패배 신호로 읽힌다는 것입니다.
승자독식 시장, 이미 우리 주변 절반을 지배하고 있다
승자독식 시장이란 단순히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 아닙니다. 제품 차별화가 낮고 초기 투자 규모가 크며, 한 번 점유율을 확보하면 지위를 유지하기 쉬운 구조를 갖춘 시장입니다. 기술 플랫폼, 교통, 반도체 장비처럼 ‘점유율이 점유율을 만들어주는’ 영역이 여기에 해당하는데요.
이런 시장에서는 경쟁 강도가 일정 임계점을 넘는 순간, 다각화 기업의 유연성 이점이 오히려 역전됩니다. 퇴로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상대방의 공격 본능을 깨우기 때문입니다.
구글 플러스는 왜 자원이 많고도 페이스북에 졌을까
구글은 2011년 구글 플러스를 출시했을 때 페이스북보다 훨씬 많은 자원, 기술력, 시장 영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습니다. 마크 저커버그는 “전면전”을 선포하고 1년을 구글 플러스 저지에만 쏟아부었고, 2014년 구글은 결국 팀을 안드로이드와 다른 사업으로 철수시켰습니다.
구글에는 퇴로가 있었습니다. 검색, Gmail, 유튜브, 안드로이드 —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었죠. 그 유연성이 저커버그에게 신호를 줬습니다. ‘구글은 끝까지 싸우지 않을 것이다.’ 반면 소셜미디어가 사업 전부였던 페이스북은 공존이 불가능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ASML이 다각화 기업 니콘을 꺾고 반도체 리소그라피 시장을 장악한 것도 같은 원리였고, 우버가 디디(중국), 그랩(동남아)에 차례로 패배하며 철수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디디는 우버와의 싸움에서 “몇 년을 손해 봐도 버티겠다”고 선언했는데요. 그 선언 자체가 전략이었던 것이지요.
‘결정적 헌신’ — 퇴로를 없애는 것이 전략이 되는 이유
이 현상의 핵심 메커니즘을 연구진은 ‘결정적 헌신(Credible Commitment)’이라고 부릅니다. 손자병법에서 적진에 상륙하면 배를 불태우라고 한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퇴로가 없다는 것을 상대방이 알면, 싸움의 성격 자체가 달라집니다.
다각화 기업이 새 시장에 진입할 때 경쟁사는 판단합니다. ‘저 기업은 여차하면 빠질 수 있다.’ 그 순간 경쟁사는 훨씬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더 오래 버팁니다. 흥미롭게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를 별도 법인으로 독립시킨 것도 같은 논리입니다. 엔지니어들이 다른 MS 사업으로 재배치될 수 없는 구조를 만든 것인데요. AI 경쟁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신호를 조직 구조로 보낸 셈입니다.
집중 전략이 통하는 조건 3가지
하지만 이 법칙이 모든 시장에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연구진이 제시한 경계 조건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유연성 가치는 높아집니다. 시장의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울 때는 리소스를 이동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여전히 이점이 됩니다. 단, 경쟁 강도가 극단적으로 높아지면 이 이점도 희석됩니다.
둘째, 매몰비용이 클수록 집중 기업이 유리해집니다. 기술·광업·항공처럼 초기 대규모 고정 투자가 필요한 시장에서는 집중 기업의 헌신이 더 신뢰받습니다. 반면 외부에서 리소스를 쉽게 조달할 수 있는 시장이라면 집중의 이점은 약해집니다.
셋째, 시너지는 퇴로와 다릅니다. 브랜드나 특허처럼 여러 사업에 동시에 활용되는 자원은 퇴로 신호를 주지 않습니다. 다각화 기업이 시너지와 유연성을 모두 갖추면 가장 강력하지만, 이는 드문 경우입니다.
내 사업은 지금 집중해야 할까, 다각화해야 할까
연구진이 창업자와 투자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경쟁사보다 빠르게 포지션을 구축할 수 있는가? 둘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포지션을 사수할 수 있는가? 두 질문 모두에 확신하기 어렵다면, 그 승자독식 시장 진입은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창업 초기에 여러 기회가 보일 때마다 다각화의 유혹을 느꼈습니다. 이 연구를 보며 다시 생각하게 됐는데요.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경쟁 강도에 따라 전략이 달라진다 — 치열하지 않은 시장은 유연성, 승자독식 시장은 집중
- 퇴로의 유무 자체가 경쟁 신호다 — 상대방은 내 퇴로를 보고 투자 강도를 결정한다
- 구조적 헌신이 말보다 설득력 있다 — 오픈AI처럼 법적·조직적 분리가 커밋먼트를 증명한다
경영 교과서는 유연성을 미덕으로 가르치지만, 어떤 시장에서는 그 미덕이 독이 됩니다. 내가 진입하려는 시장이 어떤 구조인지를 먼저 아는 것이 전략의 시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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