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보가 아니어도 된다, 좌식 직장인의 심혈관을 지키는 걸음 수

만 보를 걸어야 건강하다는 말은 이미 상식처럼 굳어졌다. 스마트워치가 진동을 울리며 ‘목표 달성’을 종용하고, 1만 이하에서 멈추면 어딘가 실패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영국 바이오뱅크 연구팀이 72,174명을 6.9년간 추적한 결과는 그 숫자에 조용히 의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만 보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앉아있는 직장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

하루 10.6시간. 이번 연구에서 참가자들의 중앙값 좌식 시간이다.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해도 이미 9시간이 앉은 채로 채워진다. 지하철, 식사, 저녁 소파까지 더하면 10시간은 금세 넘는다. 딱 평범한 직장인의 하루다.

좌식 생활은 단순히 게으른 것이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앉아있는 시간이 길수록 심혈관 질환(CVD) 발병 위험이 올라가고, 암과 당뇨병 위험도 함께 높아진다. 수명도 짧아진다. 그냥 ‘덜 움직이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앉아있는 행위 자체가 별도의 위험 요인으로 독립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여기서 잠시 흔한 착각을 짚어보자. 많은 사람이 헬스장에서 한 시간 땀을 뺐으니 나머지 시간 앉아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굳이 따지자면 이 계산은 맞지 않는다. 운동의 효과와 좌식의 해악은 별개로 쌓인다. 주말에 대청소를 한다고 평일 내내 쌓인 먼지가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운동은 운동대로 이롭지만, 좌식 시간이 쌓이는 것은 그와 무관하게 몸에 영향을 미친다.

72,174명이 6.9년간 걸어서 밝힌 숫자

2024년 《영국 스포츠 의학 저널》에 실린 이 연구는 설계부터 다르다. 참가자들이 7일간 손목 가속도계를 착용해 실제 걸음 수를 측정했다. 기억에 의존한 자기 보고식 설문이 아니다. 72,174명의 데이터를 평균 6.9년간 추적하며 CVD 발병과 사망 여부를 기록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하루 9,000~10,000보가 고도 좌식 생활자에게 최적 걸음 수였다. 이 범위를 채운 사람은 심혈관 질환 위험이 21% 낮았고, 사망 위험은 39% 낮았다. 걸음 수가 늘어날수록 위험이 선형으로 줄어드는 패턴도 일관되게 나타났다.

좌식 시간 기준선은 하루 10.6시간이었다. 이보다 많으면 ‘고도 좌식’, 적으면 ‘저도 좌식’으로 분류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연구에서 좌식 시간의 고저와 상관없이 걸음 수가 많을수록 위험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좌식 생활을 완전히 피할 수 없어도, 걷는 만큼 그 해악은 실질적으로 줄어든다.

시드니대 인구보건학자 Matthew Ahmadi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건 좌식 생활의 완전한 면죄부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움직임이 중요하고, 불가피한 좌식 시간을 걸음 수로 상쇄할 수 있다는 공중보건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4,000보면 절반의 효과가 이미 시작된다

9,000보가 목표지만, 그 이하가 무의미하진 않다. 연구팀은 4,000~4,500보에서 이미 최대 효과의 50%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준선은 2,200보다. 이 숫자를 넘는 순간부터 사망 위험과 CVD 위험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낮아지기 시작한다.

운동 과학에서 흔히 말하는 ‘첫 훈련의 효과’와 비슷하다. 처음 몇 번의 연습이 실력을 가장 빠르게 끌어올리고, 이후 향상은 완만해진다. 걸음도 마찬가지다. 첫 4,000보의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난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심리적 허들을 낮춰주기 때문이다. 만 보를 못 채웠다고 아예 포기하는 것이 가장 나쁜 선택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4,000보라면 이미 절반의 게임은 이긴 셈이다.

퇴근길 한 정거장,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를 걸어서 출근한다. 별다른 계획 없이 시작했는데, 왕복으로 약 2,500~3,000보가 자연스럽게 채워진다. 여기에 점심시간 10~15분 산책을 더하면 4,000보에 닿는다. 퇴근 후 한 정거장을 또 걸으면 6,000보를 넘는다.

직장인이 하루 9,000보를 채우는 현실적인 방법은 복잡하지 않다:

  • 출퇴근 한 정거장 걷기: 약 1,000~1,500보 × 왕복 = 2,000~3,000보
  • 점심 후 15분 산책: 약 1,500~2,000보
  •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층수에 따라 200~500보
  • 전화 통화 중 걷기: 10분에 약 800~1,000보

이 네 가지를 모두 할 필요도 없다. 연구가 말하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이것은 헬스장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적인 이동과 움직임에 관한 이야기다. 직장인은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걸을 기회를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퇴근길 한 정거장 일찍 내리는 것으로 시작하면 된다.

만 보가 목표가 아니다. 지금 걷지 않고 있는 그 시간이 문제다.

찬호

교육을 전공하고 현재 피트니스 쪽에서 일한다.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할 때 제일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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