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으로 필기하면 더 빨리 적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빨리 적을수록 더 빨리 잊어버린다면요? 타이핑이 편리함을 가져다줬지만, 뇌한테는 그게 손해일 수 있다는 연구들이 쌓이고 있습니다.
빠를수록 손해인 공부법
타이핑의 장점은 속도입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거의 실시간으로 받아 적을 수 있죠.
그런데 2014년 프린스턴 대학의 Mueller와 Oppenheimer 연구가 불편한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노트북으로 필기한 학생들은 강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받아 적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반면 손으로 쓴 학생들은 느리니까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핵심을 골라서 자기 말로 바꾸는 작업을 강제로 하게 된 거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개념 이해를 묻는 시험에서 손글씨 필기 학생들이 훨씬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받아쓰기가 아니라 생각하면서 쓴 거니까요.
속도가 오히려 학습을 방해한 겁니다.
손이 움직일 때 뇌가 연결된다
손으로 글자를 쓰는 건 단순한 근육 운동이 아닙니다. 뇌 입장에서는 꽤 복잡한 작업입니다.
손글씨를 쓸 때는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을 제어하는 운동 영역, 단어와 문장을 처리하는 언어 영역, 공간에서의 위치와 형태를 인식하는 시공간 영역이 동시에 작동합니다. 거기다 글자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주의 네트워크까지 가세하고요.
2023년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 Van der Weel 연구팀은 대학생 36명을 대상으로 고밀도 EEG를 측정했는데, 손글씨를 쓸 때 기억 형성과 학습에 핵심적인 뇌 영역에서 광범위한 연결성이 활성화됐습니다. 타이핑을 할 때는 같은 영역에서 거의 반응이 없었고요.
타이핑은 쉬운 동작입니다. 뇌가 그다지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편한 거겠죠.)
기억은 속도가 아닌 깊이로 남는다
프랑스 연구자 Longcamp와 동료들의 연구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처음 보는 낯선 문자를 손으로 익힌 그룹과 타이핑으로 익힌 그룹을 비교했는데, 손으로 쓴 그룹이 더 빠르게 기억해내고 오래 유지했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손글씨는 인지적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기억 흔적 자체가 더 풍부하게 만들어집니다. 힘들게 배운 것일수록 오래 기억나는 것처럼요.
손글씨는 느립니다. 그런데 그 느림이 뇌에게는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겁니다. 정보를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매기고, 의미를 파악하는 시간. 타이핑은 그 시간을 생략합니다.
손글씨를 다시 꺼내야 할 순간들
물론 모든 걸 손으로 쓰라는 게 아닙니다. (저도 일상적인 업무는 다 타이핑으로 합니다.)
하지만 기억과 이해가 진짜로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새로운 개념을 처음 배울 때. 회의나 강의에서 핵심을 잡아야 할 때. 아이디어를 글로 정리하고 싶을 때. 이럴 때 손글씨는 ‘느리다’는 단점이 오히려 뇌를 깊게 작동시키는 도구가 됩니다.
Psychology Today가 제안하는 방법도 거창하지 않습니다.
- 새로운 내용을 배울 때는 손으로 필기한다
- 아침에 5~10분, 일기나 할 일을 손으로 적는다
- 회의 내용을 손으로 쓴 뒤 타이핑으로 옮긴다
작게 시작해도 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결론은, 뇌는 편한 것보다 노력한 것을 더 잘 기억한다는 겁니다. 타이핑은 속도를 주고, 손글씨는 깊이를 줍니다. 무엇을 기억에 남길 것인가에 따라 도구를 선택하면 됩니다. 오늘 뭔가 중요한 걸 배웠다면, 한 번 손으로 써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