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젠테이션 마감이 이틀 남았습니다. 강남 사무실에서 현우 씨는 노트북 화면을 두 시간째 멍하니 바라보고 있습니다. 커서만 깜빡이고, 아이디어는 오질 않습니다. 아메리카노를 세 잔 비웠는데도 여전히 빈 화면입니다.
결국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원래 창의적인 사람이 아닌가 보다.
그런데 이 자기진단이 틀렸습니다. 창의력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닙니다. 심리학 연구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창의성이 없다는 진단이 왜 틀렸나
우리는 창의성을 이분법으로 봅니다. 저 사람은 창의적이고, 나는 아니다. 예술가, 디자이너, 광고 기획자에게만 있고, 나머지에게는 없다는 식으로요.
이 프레임이 문제입니다. 창의성은 특별한 두뇌 구조의 산물이 아닙니다. 원래 창의적인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창의적인 습관을 반복하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창의적인 사람들도 막힙니다. 두 시간째 화면만 보는 경험은 누구나 합니다. 다른 점은 막혔을 때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그리고 그 ‘어떻게’가 훈련의 영역에 있습니다.
더 불편한 사실도 있습니다. 막혔을 때 억지로 쥐어짜는 건 도움이 안 됩니다. 의지력을 불태우면 될 것 같지만, 그렇게 하면 막힘이 더 단단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은근히 반가운 소식이기도 합니다. 뭔가를 안 해도 된다는 뜻이니까요.) 창의력이 특정인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사실은 가장 강력한 창의성 차단제입니다.
창의성 연구가 밝힌 불편한 사실
Sophie Schweizer 등의 2016년 연구는 흥미로운 결론을 냈습니다. 창의적 습관이 단순히 아이디어 생산 능력을 높이는 게 아니라, 회복탄력성의 경로가 된다는 겁니다.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는 능력과 창의성이 같은 맥락에 있다는 말입니다. 즉, 창의성을 키우면 삶이 흔들렸을 때 더 잘 버틸 수 있게 됩니다.
Walsh(2006)에 따르면 창의성과 호기심은 서로를 강화합니다. 호기심은 창의성의 엔진이기도 하고, 창의성이 만들어내는 산물이기도 합니다. 창의성을 실천할수록 더 창의적이 됩니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반복이 뇌를 바꿉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과정을 5가지 C로 정리했습니다.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누구나 오늘부터 반복할 수 있는 습관들입니다.

다섯 가지 C, 창의적 루틴의 뼈대
첫 번째 C, Curiosity(호기심). Dumont 등(2019)이 정의한 것처럼 호기심은 새로운 정보나 경험을 탐구하려는 욕구입니다. 가장 단순한 실천은 질문 목록을 만드는 겁니다. 오늘 출근길 지하철에서 문득 궁금했던 것, 이해 안 됐던 회의 내용, 왜 그런지 몰랐던 것. 적어두고 매일 두세 개씩 답을 찾아보는 겁니다. 작아 보이지만, 이 반복이 뇌를 다르게 작동시킵니다. 창의력이 풍부하다고 알려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특성이 바로 이 ‘일상적 호기심’입니다.
두 번째 C, Constraints(제약). 역설적이지만, P. Fishman(2014)의 연구는 자원 부족이나 인위적 제한이 오히려 창의적 사고를 촉진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자유가 너무 많으면 독창성이 줄어듭니다. 마감이 코앞에 닥쳤을 때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지 않습니까. 뇌가 제약 안에서 더 잘 작동하는 겁니다. 더 나아가, 장애물을 없애려고만 하지 말고 ‘제약’으로 재프레이밍하는 것만으로도 회복탄력성이 달라집니다.
세 번째 C, Change(변화). 막혔을 때 해결책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억지로 밀어붙이지 말고, 변화를 주는 겁니다. 회사 근처 카페로 장소를 옮기거나, 같은 문제를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거나. Mamnoon(2013)의 연구는 창의적 환경 안에서 관점을 바꾸는 것만으로 모멘텀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의 말이 여기에 딱 맞습니다. “보는 방식을 바꾸면, 보이는 것이 바뀐다.”
나머지 두 C도 짚겠습니다. Curation(큐레이션)은 아이디어를 걸러내고 배열하는 능력입니다. 발표 자료를 어떻게 구성할지, 할 일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할지, 회의 안건을 어떤 순서로 배치할지. 이 모든 게 큐레이션 연습입니다. 의도적으로 반복할수록 의사결정 능력도 좋아집니다. 마지막 Context(맥락)는 아이디어를 적절한 무대에 놓는 능력입니다. Vaughan 등(2019)의 연구에 따르면 맥락은 호기심과 큐레이션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크게 규정합니다. 같은 아이디어도 어떤 맥락에서 제시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결론은, 창의력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훈련하고 안 하고의 문제라는 겁니다. 오늘 하루 질문 하나만 적어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됩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해보는 수밖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