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 있는 사람이 정작 아무것도 못 내놓는 이유

매년 글을 더 잘 쓰게 됐습니다. 그런데 발행하는 글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기준이 높아질수록 그 기준에 못 미치는 게 더 많이 보이는 겁니다.

실력이 늘수록 오히려 벽이 높아지는 역설

실력이 늘면 창작이 쉬워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리학자 리처드 해밍은 You and Your Research에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이 수상 이후 위대한 연구를 내놓지 못하는 패턴을 이야기했습니다.

수상 전에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으니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상 후에는 모든 연구가 ‘노벨상 수준’이어야 한다는 부담이 생깁니다.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것 같으면 시도 자체를 안 하는 겁니다. 실패의 두려움이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것보다 커지는 순간, 창작이 멈춥니다. 잘하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역대 최고의 아이디어들이 처음엔 바보 같았던 이유

맥킨토시 팀의 평균 나이는 21세였습니다. 제록스 PARC의 연구원 대부분은 30세 미만이었습니다. 왜 젊고 경험 없는 사람들이 시대를 바꾼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을까요.

아무도 그들에게 많은 걸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대가 없으니 이상한 아이디어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바보처럼 보여도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는 거의 항상 처음엔 바보같이 들립니다. 창업 아이디어도, 연구 방향도, 소설의 전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꺼냈을 때 “오, 대단한데요”라는 반응이 나오는 아이디어는 사실 이미 누군가 생각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익숙하게 들리는 겁니다.)

에고가 우리를 침묵시키는 방식

에고는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려 합니다. 글을 내놓지 않으면 비판받을 일이 없습니다. 아이디어를 말하지 않으면 틀릴 일도 없습니다. 에고 입장에서는 최선의 전략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극단이 생깁니다:

  • 과잉공유: 뭐든 가리지 않고 내놓습니다. 단기적으로 창작량은 많지만, 결국 신뢰를 잃습니다.
  • 과소공유: 거의 아무것도 내놓지 않습니다. 비판받을 일은 없지만, 평생 흥미로운 것을 만들지 못합니다.

에고를 지키려다 선택하는 건 대부분 두 번째입니다. (아무것도 내놓지 않으면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는 착각이죠.) 그런데 이건 창작에서 가장 값비싼 실수입니다.

진화가 5억 년을 살아남은 비결

해파리는 뼈도, 뇌도, 이빨도, 피도 없습니다. 얼핏 보면 형편없는 설계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해파리는 5억 년 이상 지구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진화적 성공의 기준으로 보면 아주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요. 진화는 수없이 많은 ‘실패작’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돌연변이의 대부분은 해롭거나 중립적입니다. 극히 일부만 유익합니다. 만약 진화에 창피함이라는 감정이 있어서 매번 ‘이 돌연변이가 충분히 좋은가?’를 따졌다면, 해파리는 없었을 겁니다.

좋은 아이디어에 도달하려면 나쁜 아이디어를 탐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창작도 진화와 같은 구조입니다.

프레임 하나를 바꾸면 달라지는 것들

한 가지 실험입니다. 친구 아딜이 생일 케이크에 쓸 문구를 고민하다 막혔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나쁜 아이디어들을 다 소리 내서 말해보자.” 그러자 모두가 말하기 시작했고, 결국 좋은 문구를 찾았습니다.

목표를 ‘좋은 것을 만들겠다’에서 ‘일단 만들겠다’로 바꾸면 됩니다. 이 프레임에서는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 것만이 실패입니다. 반쪽짜리 블로그 글이라도, 이상한 프로젝트라도 상관없습니다. 감수할 수 있는 바보스러움의 양이 결국 만들어낼 수 있는 좋은 것의 양에 비례합니다. 이 법칙에는 이름이 있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더 잘 하려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바보처럼 보이더라도 일단 만드는 쪽이 훨씬 낫습니다. 선택하는 기준을 낮추는 게 아니라, 생산하는 기준을 낮추는 겁니다. 오늘 머릿속에 있는 생각 하나, 일단 꺼내보시길.

김노마

🧠 뇌과학자. 습관연구가.
뇌과학과 행동경제학을 연구한다. 책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즐긴다. 자기계발과 라이프해킹 관련 글을 쓴다.

댓글 남기기

※ 본 글에 사용한 모든 이미지는 별도 표시가 없으면 Freepik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