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느끼는 원인 모를 피로감, LED 조명 때문일까?

재택근무가 늘면서 우리 집이 사무실이 되었다. 그런데 왜일까? 집에 있는 시간이 늘수록 이상하게 눈이 피로하고 머리가 무겁다.

밤 9시, 불 켠 우리 집이 불편한 이유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현상이다. 하루 종일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보니 눈이 뻑뻑하고 목이 뻐근하다. 처음엔 당연히 모니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도 사고, 눈 운동도 해봤다. 그런데 이상한 건 밤에 조명만 켜놓고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할 때도 여전히 불편함이 계속된다는 점이었다.

최근 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이런 의문에 답을 준다. 문제는 우리가 사용하는 LED 조명 자체에 있을 수 있다는 거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깜빡임’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깜빡임의 정체

모든 조명은 사실 깜빡인다. 형광등도, LED도, 심지어 백열전구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속도가 워낙 빨라서 우리 눈으로는 직접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마치 영화가 초당 24장의 정지 화면을 빠르게 돌려 움직이는 영상처럼 보이게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런데 이 깜빡임, 전문용어로 ‘플리커(Flicker)’가 생각보다 큰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 요즘 널리 사용되는 LED 조명의 PWM(펄스 폭 변조) 방식 때문에 더욱 그렇다.

PWM이 뭔지 쉽게 설명해보자. 조명의 밝기를 조절할 때 전구에 들어가는 전기의 양을 줄이는 대신, 전기를 매우 빠른 속도로 켰다 껐다 하는 방식이다. 마치 로봇 팔이 전등 스위치를 초당 수천 번씩 on-off 하는 것과 같다. 밝게 하고 싶으면 ‘on’ 시간을 길게, 어둡게 하고 싶으면 ‘off’ 시간을 길게 하는 식이다.

이런 방식은 제조사 입장에서는 효율적이다. 전력 소비도 줄이고 밝기 조절도 쉽다. 하지만 우리 몸은 이 미세한 깜빡임을 민감하게 감지한다.

5명 중 1명은 플리커 민감족

연구에 따르면 인구의 5-20%가 플리커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증상도 다양하다. 가벼운 눈의 피로부터 시작해서 두통, 집중력 저하, 심지어 메스꺼움까지 경험할 수 있다. 레딧에는 ‘PWM 민감족’을 위한 전용 커뮤니티가 있을 정도다.

특히 재택근무족들에게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하루 8시간 이상을 이런 조명 아래에서 보내야 하니까. 2012년 미국 에너지부 산하 퍼시픽노즈웨스트국립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품질이 낮은 LED 조명을 장시간 사용할 경우 시력 저하까지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증상을 단순히 ‘컴퓨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모니터 설정을 바꾸고 안경을 바꿔도 여전히 불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마트폰부터 천장 조명까지, 플리커는 어디에나

플리커는 생각보다 우리 주변 곳곳에 숨어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화면의 OLED 디스플레이, 집 안의 LED 조명, 심지어 TV까지. 특히 밝기를 낮춰서 사용할 때 플리커 현상이 더 심해진다.

주파수로 따져보면 더 놀랍다. 많은 기기들이 1000Hz 이하의 낮은 주파수로 깜빡인다. 인간의 눈은 최대 2000Hz까지 감지할 수 있고, 특히 주변시야에서는 더욱 민감하다. 1000Hz 미만의 플리커는 민감한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불편함을 줄 수 있다.

한국의 한 조명 전문업체 조사에 따르면, 시중에 판매되는 저가형 LED 조명의 70% 이상이 심각한 플리커 현상을 보인다고 한다. 특히 온라인에서 저렴하게 판매되는 제품들일수록 더 심했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다행히 해결책은 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플리커프리’ 조명으로 바꾸는 거다. 이런 제품들은 PWM 대신 CCR(일정 전류 감소) 방식을 사용한다. 전구를 껐다 켰다 하는 대신, 들어가는 전류의 양 자체를 조절해서 밝기를 바꾸는 방식이다.

의료용이나 사진 촬영용 조명에서 주로 사용되던 기술인데, 최근에는 일반 가정용 제품도 늘어나고 있다. TÜV 라인란드 같은 기관에서 ‘플리커프리’ 인증을 받은 제품들을 찾아보면 된다.

가격은 일반 LED보다 2-3배 비싸지만, 하루 8시간 이상 집에서 보내는 재택근무족들에게는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 실제로 플리커프리 조명으로 바꾼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눈의 피로가 확실히 줄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더 편해졌다”는 반응이 많다.

당장 확인해볼 수 있는 방법

집에 있는 조명이 플리커를 일으키는지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고 조명을 비춰보면 된다. 화면에 검은 줄무늬가 흘러가듯 나타난다면 그 조명은 플리커를 일으키는 거다.

조명을 당장 바꾸기 어렵다면 간접 조명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천장의 직접 조명 대신 벽이나 천장에 빛을 반사시키는 간접 조명을 사용하면 플리커의 영향을 줄일 수 있다. 또한 3점 조명 시스템(천장등 + 데스크 램프 + 간접조명)을 활용해 하나의 광원에만 의존하지 않는 것도 좋다.

작업할 때는 모니터와 주변 조명의 밝기 차이를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두운 방에서 밝은 모니터를 보는 것보다는, 적당한 조도의 조명 아래에서 작업하는 게 눈의 피로를 줄여준다.

건강한 재택근무를 위한 투자

재택근무가 일상화된 지금, 집안 환경에 대한 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좋은 의자, 좋은 모니터만큼이나 좋은 조명도 중요하다. 특히 눈 건강은 한 번 나빠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원인 모를 눈의 피로나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면, 한 번쯤 집안 조명을 점검해보자. 문제가 컴퓨터가 아니라 조명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 플리커프리 조명 하나만 바꿔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질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결국 건강한 재택근무 환경을 만드는 것도 자기계발의 한 부분이다. 몸이 편해야 마음도 편하고, 마음이 편해야 일의 효율도 올라간다. 보이지 않는 깜빡임 하나가 우리 삶의 질을 이렇게나 좌우할 줄 누가 알았겠나.

참고자료

찬호

교육을 전공하고 현재 피트니스 쪽에서 일한다.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할 때 제일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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