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 기억과 학습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억이 안 나는 일이 있으면 “머리가 나빠서”라고 하죠. 공부할 때도 “뇌가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을 안 하면 “의지가 약해서”라고 탓하고요.
그런데 최근 과학계를 뒤흔든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가 기억한다는 거예요. 뇌만이 아니라 신장, 근육, 췌장 세포까지 말입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발견인지 아시나요? 그동안 우리가 “몸이 말을 안 듣는다”고 투덜댔던 게 사실은 몸이 이미 기억하고 있던 패턴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세포도 벼락치기는 소용없더라
뉴욕대학교 쿠쿠시킨 교수팀이 2024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한 연구를 보면 놀랍습니다. 인간의 신장 세포를 실험실에서 키우면서 화학 신호를 주었더니, 이 세포들이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신호를 더 오래 기억하더라는 겁니다.
뇌가 없는 단일 세포가 우리와 똑같은 학습 패턴을 보인다는 거예요. 벼락치기보다 분산 학습이 효과적이라는 걸 신장 세포도 안다는 말입니다.
실험 결과를 보면 더 놀랍습니다. 3분간 연속으로 화학 신호를 준 세포는 몇 시간만 기억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양을 10분 간격으로 4번 나누어 준 세포는 하루 이상 기억했어요. 바로 ‘간격 효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저도 이걸 알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오늘은 열심히 운동했으니 내일은 쉬어도 돼”라고 생각했는데, 근육 세포들도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자극을 더 잘 기억한다니 매일 반복하는 게 그만큼 중요하겠구나 하고요.
100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비밀
사실 이런 발견이 처음은 아닙니다. 1906년 허버트 스펜서 제닝스라는 동물학자가 이미 발견했어요. 연못에서 채취한 단세포 생물 스텐토(Stentor)를 관찰하다가 놀라운 걸 봤습니다.
빨간 염료로 이 단세포 생물을 자극하면 처음에는 피하려고 몸을 구부렸습니다. 그게 안 되면 물을 뿜어서 염료를 밀어냈어요. 그것도 안 되면 몸을 완전히 숨겼죠. 구부리기 → 뿜기 → 숨기의 3단계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나타난 스텐토에게 또 염료를 뿌렸더니, 바로 3단계 숨기기부터 시작하더라는 겁니다. 이 작은 세포가 ‘학습’을 했다는 증거였어요.

하지만 당시 과학계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세포가 어떻게 기억을 하냐”며 무시했죠. 그러다가 2019년에야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이 제닝스의 실험을 재현해서 맞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100년 만에 복권된 발견이었어요.
당신의 몸이 기억하는 방식
그럼 우리 몸의 세포들은 어떻게 기억할까요? 쿠쿠시킨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세포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경험은 시간에 따른 화학 물질의 패턴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이 분비됩니다. 운동하면 젖산이 나오고요. 음식을 먹으면 인슐린이 나옵니다. 세포 입장에서는 이런 화학 신호들이 바로 ‘경험’인 거예요.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세포의 DNA 스위치를 켜고 끕니다. 특정 유전자가 활성화되어 세포가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에서 더 빠르게 반응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예를 들어 면역 세포가 바이러스를 만나면, 그 정보를 기억해둡니다. 다음에 같은 바이러스가 오면 더 빠르게 항체를 만들어내는 것도 바로 이런 세포 기억 때문이라네요.
이제 몸을 뇌처럼 대해야 하는 이유
첫째, 식사 패턴이 췌장 세포에 각인됩니다. 매일 다른 시간에 폭식하면 췌장 세포들이 혼란을 겪는다는 말입니다. 불규칙한 식사가 당뇨를 부르는 이유를 이제 알겠죠.
둘째,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말에만 몰아서 하는 운동보다,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하는 게 왜 좋은지 세포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어요. 근육 세포들이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자극을 더 잘 기억하니까요.
셋째, 스트레스 관리가 더 중요해집니다. 만성 스트레스가 몸의 모든 세포에 ‘나쁜 기억’을 남긴다는 걸 생각하면, 작은 스트레스라도 방치하면 안 되겠죠.
저도 이 연구를 알고 나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운동할 때도, 식사할 때도, 심지어 잠들 때도 “내 세포들이 이걸 기억할 텐데”라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실제로 하버드대학교 샘 거시먼 교수는 “모든 생명체에게 기억은 유용한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뇌가 생기기 수억 년 전부터 세포들은 이미 기억을 활용해 생존해왔다는 거예요.
앞으로 바뀔 모든 것들
이 연구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쿠쿠시킨 교수는 “앞으로 우리 몸을 뇌처럼 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암 치료에서도 활용될 수 있어요. 암세포가 항암제 패턴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알면, 더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겠죠.
학습법도 바뀔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뇌만 고려했는데, 몸 전체가 학습에 참여한다는 걸 안다면 완전히 다른 교육 방법이 나올 수도 있어요.
40년 전 노벨상 수상자 바바라 맥클린톡이 물었던 질문, “세포는 자기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에 대한 답이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답은 “생각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다”입니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가 매 순간 경험을 기록하고 학습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그들을 더 잘 대해줘야 할 때가 아닐까요?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