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 위기는 스마트폰이 만든 문제라는 속설 뒤에는 꼭 소셜미디어 핑계가 따라붙는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끊으면 집중력이 돌아온다는 거다. 정녕 집중력 위기는 디지털 시대가 발명한 것인가?
아니다. 옥스퍼드 올소울스 칼리지의 과학사학자가 쓴 한 에세이는 이 문제가 500년 전에 이미 시작됐다고 말한다.
인쇄술이 만든 최초의 정보 과부하
1500년대, 유럽에서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전례 없는 양의 책이 쏟아졌다. 지식이 빠른 속도로 유통되기 시작했고, 당시 학자들은 낯선 고민에 빠졌다. 무엇을 읽을 것인가. 얼마나 읽어야 하는가. 모든 챕터를 발췌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지금 누구나 익숙하다. 어떤 콘텐츠를 볼 것인가. 얼마나 스크롤해야 충분한가. 모든 알림에 반응해야 하는가. 500년의 간격이 있을 뿐, 본질은 같다.
당시 학자들은 ‘코먼플레이스 북(commonplace book)’으로 대응했다. 핵심 발췌문을 한 권의 노트에 모아두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좋은 책이 너무 많았다.
17세기 해부학자가 고안한 집중력 실험
덴마크 출신 해부학자이자 지질학자 니콜라스 스테노(Nicolaus Steno)는 1650년대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더 근본적인 해법을 고안했다. 그의 개인 노트에는 이런 기록이 남아 있다.
“해로운 서두름은 피해야 한다. 해법은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스테노는 여러 책을 빠르게 훑는 대신 특정 주제에만 집중하는 방식을 택했다. 책이 넘쳐나는 시대에 모든 것을 읽으려는 욕심을 내려놓은 것이다.
여기서 잠시 칼 뉴포트(Cal Newport)의 개념을 떠올려 보자. 딥워크(Deep Work)는 방해 없이 인지적으로 요구되는 작업에 집중하는 능력을 뜻한다. 스테노의 전략은 그 정의와 정확히 일치한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대에 인간의 뇌는 이미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오전에는 의학만’ — 시간 블로킹의 기원
스테노의 전략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시간 블로킹이다. 그는 노트에 이렇게 썼다. “정오 전에는 의학 외의 것을 해선 안 된다.” 그리고 메디치 도서관의 교부 문헌을 읽는 데 오전 시간의 거의 전부를 쏟았다.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훈련 시간을 따로 정해두지 않는 선수가 세계 챔피언이 되기 어렵다는 것과 같다. 연습을 ‘시간이 나면 한다’가 아니라 ‘이 시간에는 반드시 한다’로 바꾸는 순간, 실행의 질이 달라진다. 스테노는 400년 전에 그 원리를 적용하고 있었다.
슬로우 프로덕티비티(Slow Productivity)는 뉴포트가 2024년 제안한 개념이지만, 그 핵심 — 적게 하되 깊게 하라 — 은 스테노의 노트 속에 이미 적혀 있었다.
400년이 지나도 뇌의 작동 방식은 같다
뉴포트는 스테노의 사례를 이렇게 정리한다. “깊이 생각하는 능력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인간이 정교한 정보에 접근하기 시작한 이후 줄곧 인간 경험의 핵심이었다.”
결국 집중력 위기는 스마트폰이 발명한 문제가 아니다. 정보가 사람의 처리 능력을 초과하는 순간마다 반복되는 패턴이다. 인쇄술이 그랬고, 텔레비전이 그랬고, 인터넷이 그랬다.
해법도 매번 같다. 정보 과부하를 인정하고, 하나에만 집중하고, 그 집중에 특정 시간을 배정한다. 스테노가 1650년대에 손으로 쓴 노트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다.
400년이 지나도 뇌의 작동 원리는 바뀌지 않았다. 바뀐 건 우리를 산만하게 만드는 것들의 형태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