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욕조가 적혈구를 늘린다, 5주 실험의 결과

마라톤 선수들은 고지대를 찾는다. 해발 2,000m 이상의 훈련 캠프에서 몇 주를 보내는 건 엘리트 선수에게 드문 일이 아니다. 희박한 공기 속에서 몸이 더 많은 적혈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적혈구는 더 많은 산소를 근육으로 실어 나른다. 경기장으로 돌아왔을 때 그 차이가 기록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집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고 45분간 앉아있어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정말로?

왜 엘리트 선수들은 산을 오르는가

고도 훈련의 원리는 단순하다. 공기 중 산소 농도가 낮아지면 몸은 더 많은 적혈구를 만들어 부족한 산소를 보충하려 한다. 훈련을 마치고 평지로 돌아오면 이제 산소는 충분한데 적혈구는 그대로다. 남아도는 산소 운반 능력이 퍼포먼스로 직결된다.

문제는 현실이다. 고산 훈련 캠프는 돈이 든다. 비행기를 타야 하고, 수 주를 일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올해 런던 마라톤을 준비하는 일반 러너에게 케냐 이텐 훈련 캠프는 애초에 선택지가 아니다.

영국 연구팀이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졌다. 열이 고도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뜨거운 물이 혈액을 바꾸는 방식

열은 혈액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 더운 물에 몸을 담그면 혈액 중 액체 성분인 혈장이 팽창한다. 혈장이 늘어나면 적혈구가 상대적으로 희석된다.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이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셈이다.

여기서 잠시 몸의 반응을 들여다보자.

몸은 이 변화를 산소 부족 신호로 인식한다. 고도에서 산소가 줄어들었을 때와 비슷한 경보가 울린다. 그래서 더 많은 적혈구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 혈장도 늘고 적혈구도 늘어난다. 결과적으로 혈액 총량이 증가하고 산소 운반 능력도 올라간다.

고도에서는 산소 자체가 부족해서 적혈구가 늘어난다. 열에서는 혈장 팽창으로 인한 희석 효과가 같은 신호를 만든다. 경로가 다를 뿐, 목적지는 같다.

5주 욕조 실험의 결과

연구팀은 훈련된 지구력 러너들을 모집해 5주 실험을 진행했다. 기존 훈련 루틴은 그대로 유지했다. 추가된 것은 딱 하나, 주 5회 뜨거운 욕조 입욕이었다.

조건은 단순했다. 집 욕조에 40°C 물을 채우고 45분간 앉아있는다. 저렴한 온도계로 온도를 유지하고, 식으면 뜨거운 물을 더 부었다. 연구실 장비가 아니라 일반 가정의 욕조였다.

5주 후 결과는 의외였다. 적혈구 수치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심장의 좌심실 용적도 커졌다. 심장이 한 번 박동할 때 더 많은 혈액을 내보낼 수 있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VO₂max, 즉 최대 산소 섭취량은 평균 4% 향상됐다. 트레드밀 테스트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속도도 올라갔다. 달리기 강도를 높이거나 훈련량을 늘리지 않고 얻은 결과였다.

욕조 훈련, 어떻게 시작할까

프로토콜은 간단하다. 40°C, 45분, 주 5회, 5주. 훈련 직후에 입욕하면 효과가 가장 잘 나타났다.

주의할 점도 있다. 고온에서 장시간 머무르면 탈수, 어지러움, 열 관련 증상이 올 수 있다. 충분한 수분 섭취가 필수다. 심혈관계 질환이나 기저 질환이 있다면 의사와 먼저 상담해야 한다.

연구에도 한계는 있다. 사우나나 스팀룸이 동일한 효과를 내는지, 더 짧은 시간이나 낮은 온도로도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실제 레이스 기록으로 이어지는지도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접근성이다. 고도 훈련 캠프에 수백만 원을 쓸 필요가 없다. 집에 욕조가 있으면 시작할 수 있다.

뜨거운 물이 몸을 속인다. 산소가 부족하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몸은 그 착각에 반응해 스스로를 강화시킨다. 달리기 기록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산을 오를 필요는 없다.

더 빨리 달리고 싶다면, 먼저 욕조에 들어가라.

찬호

교육을 전공하고 현재 피트니스 쪽에서 일한다.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할 때 제일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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