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생각만 해도 왜인지 진이 빠지는 사람이 있다. 딱히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같이 있으면 유독 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소진된다. 그게 단순히 기분 문제라고 생각했다면 — 사실 이건 몸의 이야기다. 연구에 따르면, 그런 사람이 딱 1명이어도 내 생물학적 나이가 실제로 9개월 더 높게 나타난다. 기분이 나쁜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주변에 ‘그런 사람’ 한 명쯤 없나?
심리학에서는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관계를 ‘해슬러(hassler)’라고 부른다. 가끔 피곤하게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습관처럼 삶을 힘들게 만드는 사람이다. 가끔 갈등이 생기는 수준은 해당 안 된다 — 자주,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관계만 해당한다.
이게 생각보다 흔한 이야기다. PNAS에 발표된 연구에서 참가자의 약 30%가 자신의 사회적 네트워크 안에 해슬러가 1명 이상 있다고 답했고, 10%는 2명 이상이었다. 상담실에서도 진짜 자주 나오는 주제다. “딱히 뭘 했다는 건 아닌데, 그 사람 생각하면 그냥 피곤해요.” — 이런 말을 꽤 자주 듣는다(나만 이런 건가 싶었던 분들, 전혀 아니다).
주목할 부분이 또 있다. 이런 관계를 더 많이 보고하는 그룹이 있다. 여성, 흡연자, 어린 시절 스트레스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다. 단순히 성격 차이가 아니라, 삶의 맥락이 해슬러를 더 많이 만들기도 한다는 뜻이다.
기분만 나쁜 줄 알았는데 — 몸이 반응하고 있다
이 연구가 특별한 건, 단순한 설문이 아니라 생물학적 노화 지표를 직접 측정했다는 점이다. 참가자들의 타액 샘플을 분석해서 두 가지를 봤다. 첫 번째는 현재 생물학적 나이, 즉 숫자 나이보다 몸이 얼마나 더 늙었는지. 두 번째는 지금 이 순간 노화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지다.
결과를 보면 솔직히 좀 놀랐다. 해슬러가 1명 늘어날 때마다 생물학적 나이가 평균 9개월 더 높게 나타났다. 노화 속도도 1.5% 빠른 것으로 측정됐다.
사실 만성 스트레스가 몸을 노화시킨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빈곤, 차별, 실직 같은 장기 스트레스가 신체를 갉아먹는 것처럼, 특정한 한 사람과의 관계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거기에 스트레스 대처 능력까지 떨어지면, 악순환은 더 빨라진다. 기분이 나쁜 게 전부가 아니라, 몸이 반응하고 있다는 거다(더 말하고 싶지만 여기서 줄이겠다).
왜 유독 가족에서 더 심하게 나타날까?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해슬러의 노화 가속 효과는 친구나 지인보다 가족 관계에서 훨씬 강하게 나타났다.
숫자가 꽤 명확하다. 친구 관계에서 해슬러로 분류된 비율은 3.5%에 불과했는데, 부모나 자녀 관계에서는 약 10%였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가족은 끊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친구라면 연락을 서서히 줄이면 그만이다. 하지만 부모, 자녀, 형제자매는 다르다. 평생에 걸쳐 쌓인 관계고, 다른 가족과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좋은 순간들이 공존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관계에 계속 노출되고, 그 시간이 길수록 영향도 누적된다.
한 가지 예외도 있다. 배우자나 파트너와의 갈등은 동일한 노화 가속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배우자 관계에서는 갈등과 함께 지지가 공존하는 경우가 많아서 부정적 영향이 어느 정도 상쇄된다고 본다. 갈등 자체가 아니라 지지가 빠진 갈등이 문제라는 거다.
그렇다고 당장 인연을 끊으라는 말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연구도 아직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타액 샘플이 한 번만 측정됐기 때문에 완전한 인과관계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거꾸로, 이미 노화가 빠른 사람이 더 예민해져서 상대방을 해슬러로 인식할 가능성도 있다. 우울증처럼 노화와 관계 인식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도 있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하다. 힘든 관계를 그냥 방치하는 건 감정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 그냥 참으면 된다는 생각이, 몸도 같이 쥐어짜고 있을 수 있다.
오늘 바로 해볼 수 있는 것:
- 관계 목록 점검 — 최근 한 달 안에 생각하면 긴장되거나 지치는 사람을 적어본다. 어디서 에너지가 새고 있는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 접촉 방식 조정 — 당장 끊지 않아도 된다. 만나는 빈도, 대화 주제, 관계의 깊이를 조금씩 조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관계는 기분 문제가 아니라 건강 문제이기도 하다. 마침 요즘 머릿속에 자꾸 떠오르는 그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 딱 한 번쯤 들여다볼 타이밍일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