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항상 시간에 쫓길까? 시간 추정 오류의 심리학

“5분만 더 잘게” 했다가 2시간 더 잔 경험, 다들 있지?

안녕, 심리상담사 이수진이다. 오늘도 상담실에서 클라이언트 분께 “잠시만요, 5분만 더 주세요”라고 말했다가 20분이 지난 후에야 문득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이렇게 시간 감각이 없었나? 아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우리 뇌가 시간을 착각하는 현상 때문이다.

아침 출근길, 당신의 뇌는 이미 속고 있다

월요일 아침, 알람이 울린다. “어, 일찍 일어났네? 시간 여유 있으니까 커피 한 잔 마시고 가자.” 그런데 막상 나가려니 10분이 모자라다. 결국 뛰어서 지하철을 타고 숨을 헐떡이며 사무실에 도착한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데도 시간 계산을 제대로 못하는 이유가 뭘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 뇌는 미래의 일을 항상 낙관적으로 예측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라고 부른다. 이 현상을 처음 연구한 사람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엘 카네만과 아모스 트버스키다.

5분이 20분 되는 마법의 정체

카네만과 트버스키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논문 완성 시간을 예측하게 한 거다. 결과가 어땠을까?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실제보다 40% 적게 시간을 예측했다. 33일 걸릴 일을 24일이면 끝날 거라고 생각한 거다. 더 놀라운 건, 과거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점이다.

우리 뇌는 “이번엔 다를 거야”라고 생각한다. 마치 로또 살 때처럼 말이다. 이번엔 교통체증이 없을 거고, 이번엔 갑작스런 일이 생기지 않을 거고, 이번엔 모든 게 완벽하게 진행될 거라고 착각한다.

왜 우리는 시간을 착각할까?

1. 내부 관점의 함정

우리는 내부 관점에 갇혀 있다. 내가 하는 일만 생각하고, 방해요소는 고려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보고서 쓰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해”라고 생각할 때, 실제로는 이런 일들이 끼어든다.

  • 동료가 갑자기 질문을 한다
  • 화장실을 간다
  • 휴대폰을 확인한다
  • 참고 자료를 찾는다
  • 컴퓨터가 느려진다

이런 예상치 못한 변수들을 뇌가 자동으로 무시한다. 마치 내가 로봇처럼 완벽하게 일할 거라고 착각하는 거다.

2. 기억의 마법 – 과거를 미화하다

더 웃긴 건, 우리가 과거 경험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난번에 비슷한 일로 얼마나 고생했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대신 “그때도 결국 해냈잖아”라는 결과만 기억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확증편향”이라고 부른다. 내가 원하는 정보만 골라서 기억하는 거다. 마치 인스타그램 필터처럼, 좋았던 부분만 선명하게 남고 힘들었던 부분은 뿌옇게 처리된다.

3. 멀티태스킹의 착각

현대인의 또 다른 착각은 멀티태스킹이다. “이메일 확인하면서 보고서 쓰면 시간 절약되겠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작업 전환비용이 발생한다.

스탠포드 대학 연구에 따르면, 멀티태스킹을 할 때 생산성이 최대 40%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5분 걸릴 일이 8-10분 걸리는 이유다.

시간 추정 오류의 실제 사례들

직장에서의 시간 함정

내가 상담실에서 만난 클라이언트 중 김 대리가 있다. 그는 항상 “금방 끝나요”라고 말했다가 야근을 반복했다.

“프레젠테이션 자료 만드는 데 2시간이면 충분해요”
실제로는 5시간 걸렸다. 왜?

  • 상사가 중간에 방향을 바꾸라고 했다 (1시간)
  •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했다 (1시간)
  • 데이터를 찾는 데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1시간)

일상 생활의 시간 착각

아침에 “샤워하고 나가는 데 30분이면 충분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 머리가 잘 안 된다 (추가 10분)
  • 입을 옷을 고민한다 (추가 5분)
  • 휴대폰을 어디 뒀는지 찾는다 (추가 5분)
  • 문 잠그고 나서 가스밸브 확인한다 (추가 2분)

결국 52분이 걸린다. 거의 두 배다.

뇌과학으로 보는 시간 인식의 비밀

뇌 연구를 보면 더 재미있는 사실이 나온다. 시간을 인식하는 뇌의 여러 부위가 서로 다르게 작동한다는 거다.

감정이 시간을 왜곡한다

즐거운 일을 할 때는 시간이 빨리 간다. 반대로 지루하거나 스트레스받는 일을 할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

상담을 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벌써 50분이 지났지?”라고 놀라는 클라이언트가 있다. 반대로 “겨우 20분밖에 안 지났어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주의 집중과 시간 감각

몰입 상태에서는 시간 감각이 완전히 사라진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이를 “몰입(Flow)”이라고 명명했다.

게임을 하다가 “잠깐만, 5분만 더”라고 했는데 2시간이 지난 경험, 다들 있지? 이때 뇌는 시간 추적 기능을 거의 끈다고 한다.

시간 착각에서 벗어나는 실전 팁

1. 외부 관점 활용하기

“만약 내 친구가 이 일을 한다면 얼마나 걸릴까?”라고 생각해보자. 타인의 일을 예측할 때는 훨씬 정확하다. 이를 외부 관점(Outside View)이라고 한다.

실제로 카네만이 추천하는 방법이다. 내 일을 마치 남의 일처럼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2. 버퍼 타임 두기

예상 시간에 50% 정도 여유를 두자. 1시간 걸릴 일이라면 1시간 30분을 확보하는 거다.

“그럼 너무 여유롭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딱 맞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확 줄어든다.

3. 과거 기록 활용하기

시간 일기를 써보자. 매일 주요 활동에 걸린 시간을 기록하는 거다. 2주만 해봐도 내 패턴이 보인다.

예를 들어:

  • 아침 준비: 예상 30분 → 실제 45분
  • 보고서 작성: 예상 2시간 → 실제 3시간 20분
  • 운동: 예상 1시간 → 실제 1시간 15분

이렇게 데이터가 쌓이면 현실적인 시간 계획이 가능하다.

4. 알림 설정하기

스마트폰 타이머를 적극 활용하자. “30분 후에 알림”을 설정하면 몰입 상태에서도 시간을 의식할 수 있다.

특히 25분 집중 + 5분 휴식을 반복하는 포모도로 기법이 효과적이다. 시간 감각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된다.

완벽주의가 시간 착각을 부른다

내 상담 경험을 보면,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시간 추정을 잘못한다.

“완벽하게 해야 해”라는 생각 때문에 무한 수정에 빠진다. 80% 완성된 보고서를 100%로 만들려고 50% 시간을 더 쓴다. 결국 파레토 법칙의 함정에 빠지는 거다.

완벽주의 탈출법

“80% 완성도로 일단 마무리하자”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나머지 20%는 피드백을 받은 후 수정하면 된다.

실제로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완료가 완벽보다 낫다”라고 말한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사훈이기도 하다.

시간 관리는 감정 관리다

시간 추정 오류의 근본 원인은 감정이다.

  • 불안할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
  • 스트레스받을 때는 시간 감각이 왜곡된다
  • 즐거울 때는 시간이 빨리 간다

결국 감정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 시간도 잘 관리한다.

감정 조절 팁

깊게 숨쉬기를 해보자. 스트레스받을 때 3초 들이마시고, 3초 참고, 3초 내쉬는 3-3-3 호흡법이 효과적이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도 중요하다. 미래 걱정이나 과거 후회 때문에 현재 시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에 쫓기는 삶이 싫다면

먼저 내 뇌의 착각을 인정하자. 우리는 시간 예측에 완전히 무능하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공통된 특성이다.

대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시간 기록하기, 여유 시간 두기, 외부 관점 활용하기 같은 방법들 말이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지 말자. 시간 계획이 틀어져도 괜찮다. 완벽한 시간 관리는 없다. 조금씩 나아지면 된다.

결국 시간 관리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시간을 착각하는지, 어떤 감정 상태에서 시간 감각이 왜곡되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5분만 더”라고 말하고 정말 5분 만에 끝내는 날이 올 거다. 아니면 적어도 10분 만에는 끝낼 수 있을 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이 글은 심리상담사 개인의 상담 경험과 심리학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시간 관리 어려움이 지속된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이수진

심리연구소에서 심리상담사 겸 콘텐츠 마케터로 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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