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심리학] 좋은 말도 되풀이하면 나쁜 말이 된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습관이 당신의 인간관계를 소리 없이 망치고 있을지도 몰라.

안녕, 심리상담사 수진이야. 오늘은 내가 상담 현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대화의 함정에 대해 이야기해볼게. 특히 ‘좋은 말도 되풀이하면 나쁜 말이 된다’는 주제로 말이야. 혹시 누군가에게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한 경험 있어? 그리고 상대방이 갑자기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낸 적 있어? 그건 아마도 네가 모르는 사이에 반복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일 거야.

나도 모르게 빠지는 반복의 함정

지난주 상담실에서 만난 민수(가명)와 지현(가명) 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결혼 5년 차인 이 부부는 최근 들어 대화만 시작하면 싸움으로 번지는 문제로 상담을 찾아왔어.

“선생님, 제 아내는 제 말을 전혀 듣지 않아요. 중요한 이야기를 해도 ‘응’, ‘그래’ 이런 반응만 하고 정작 행동은 전혀 바뀌지 않죠.” 민수가 첫 상담에서 털어놓은 말이야.

반면 지현은 이렇게 말했어. “남편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똑같은 말만 반복해요. 한두 번도 아니고 하루에 네다섯 번씩이요. 처음엔 잘 들었는데 계속 같은 말을 들으니 귀를 막고 싶더라고요.”

두 번째 상담 시간에 나는 이들의 대화를 직접 관찰해볼 기회가 있었어. 민수가 주말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는 상황이었는데, 흥미로운 패턴이 드러났어.

민수: “이번 주말에 장인어른 생신이니까 미리 선물 사러 가야 해.”
지현: (스마트폰을 보며) “응…”
민수: (잠시 후) “장인어른 선물, 뭐가 좋을지 같이 봐야 할 것 같아.”
지현: “그래, 알았어.”
민수: (또 잠시 후) “내 말 듣고 있어? 이번 주말에 장인어른 선물 사러 가자고.”
지현: (짜증내며) “아, 들었다니까! 왜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하는데?”
민수: “네가 안 듣는 것 같으니까 그렇지! 이번 주말에 선물 사러 갈 거라고. 뭐가 좋을지 같이 좀 봐야 한다고. 아버님 생신선물인데 관심 좀 가져.”

보면 볼수록 상대방의 반응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같은 말을 반복하고, 그 반복이 결국 비난으로 변하는 패턴이 뚜렷했어. 처음에는 단순한 안내였던 말이 네 번째 반복될 때는 이미 “너는 내 부모님에게 관심이 없다”라는 비난으로 바뀌어 있었지.

세 번째 상담에서 나는 이들에게 한 가지 실험을 제안했어. 일주일 동안 민수는 같은 말을 두 번 이상 반복하지 않기, 지현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기를 약속했지.

“솔직히 처음엔 너무 어색했어요.” 민수가 말했어. “뭔가 계속 말하고 싶은데 참아야 했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내가 먼저 물어보더라고요. ‘주말에 뭐 사러 간다고 했지?’ 이렇게요.”

지현도 고개를 끄덕였어. “남편이 한 번만 얘기하니까 오히려 더 집중해서 들리더라고요. 그리고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으니 대화가 더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반복은 왜 문제가 될까?

심리학적으로 보면, 우리는 반복이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배워왔어.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반복의 혜택이 말하는 사람에게만 있다는 거야. 즉, 내가 같은 말을 반복할 때 그 내용을 더 잘 기억하는 건 듣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야.

게다가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들을 때는 오히려 ‘이미 알고 있어’라는 심리가 작동해서 세부 내용을 놓치게 돼. 이건 마치 매일 같은 길을 지나다니면서도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해.

더 중요한 건, 반복이 지속될수록 그 효과는 점점 감소한다는 거야.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많은 정보를 얻지만, 두 번째 읽을 때는 ‘이미 알아’라는 생각에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대화에서도 똑같은 말을 들으면 우리의 뇌는 ‘나도 알아, 나도 알아’라며 그 정보를 무시하기 시작해.

우리가 반복하게 되는 진짜 이유

그럼 우리는 왜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될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첫째, 상대가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때야. 예를 들어 아내가 “토요일 오후 4시에 기차역 앞에서 만나요”라고 말했는데 남편이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아내는 남편이 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반복하게 돼.

둘째, 대화를 주도하고 싶은 심리가 작용할 때야. 특히 직장에서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경우가 많아. 나르시시즘의 한 형태라고 볼 수도 있지.

셋째, 단순히 자신의 말하기 습관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야. 실제로 내가 같은 말을 얼마나 반복하는지 점검해보면 생각보다 훨씬 많이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효과적인 대화를 위한, 반복하지 않는 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불필요한 반복을 피하고 효과적으로 대화할 수 있을까?

1. 자신의 말하기 습관 점검하기

내가 했던 방법은 친구에게 부탁해서 내가 같은 말을 반복할 때마다 “메아리”라고 말해달라고 한 거야. 이건 마치 다이어트를 위해 식사 일기를 쓰는 것과 비슷해. 처음에는 불편하지만, 이렇게 의식적으로 체크해보면 자신의 말하기 패턴을 인식하는 데 큰 도움이 돼.

2. 상대의 무반응에 바로 반복하지 않기

상대가 내 말에 반응하지 않을 때, 바로 같은 말을 반복하기보다는 “방금 내가 한 말 들었어?”라고 물어보는 게 좋아. 이렇게 하면 상대가 정말 듣지 못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

3. 간격 반복(spaced repetition) 활용하기

꼭 반복해야 한다면, 시간 간격을 두고 하는 게 효과적이야. 예를 들어 중요한 정보를 전달할 때는 처음에 간략히 언급하고, 상세 설명 후 다시 요약하는 방식으로 말이야. 이렇게 하면 상대방의 기억에 더 잘 남아.

상담소에서 진행했던 의사소통 워크숍에서 있었던 일이야. 한 참가자가 자기 아이에게 “네가 친구를 밀지 말았어야지”라는 말을 계속 반복했더니, 결국 아이가 “나도 알아요! 똑같은 말을 수백 번도 더 듣네요!”라고 소리쳤대. 그 순간 깨달았다고 하더라. 좋은 말도 되풀이하면 나쁜 말이 되고, 나쁜 말을 되풀이하면 더 나쁜 말이 된다는 걸 말이야.

관계를 살리는 대화의 기술

심리상담사로 일하며 깨달은 건, 대화의 질이 관계의 질을 결정한다는 거야. 특히 직장이나 가정에서 상대방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말을 먼저 돌아보는 습관이 필요해.

다음에 중요한 대화를 앞두고 있다면, 미리 전달할 핵심 메시지를 정리해보고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지 않도록 주의해봐. 그리고 상대의 반응을 잘 관찰하면서 말의 속도와 양을 조절하는 것도 중요해.

마지막으로, 반복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잠시 멈추고 ‘왜 내가 이 말을 다시 하려고 하는지’ 생각해보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아. 이렇게 자신의 말하기 패턴을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노력만으로도 대화의 질은 크게 달라질 수 있어.

내일부터 한 번 도전해볼래? 같은 말 반복하지 않기. 생각보다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당신의 대화와 관계가 풍요로워질 거야. 그리고 혹시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댓글로 물어봐. 함께 더 나은 대화를 만들어가보자!

이수진

심리연구소에서 심리상담사 겸 콘텐츠 마케터로 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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