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의 시나리오를 살고 있는가? 시스템이 만든 ‘나’에서 벗어나기

인스타그램을 켜자마자 누군가가 “오늘도 화이팅!”이라며 아침 운동 인증샷을 올렸다. 완벽한 조명 아래 완벽한 각도의 셀카. 링크드인에서는 “감사한 하루였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이 넘쳐난다. 모두가 자신만의 스토리를 ‘큐레이션’하고 ‘브랜딩’한다. 그런데 정말 그 스토리가 당신 것인가?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가 지금 우리 시대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아마 이렇게 말할 거다. “당신들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사실 누군가가 써준 시나리오를 그대로 연기하고 있을 뿐이야.”

자유가 두려워서 역할을 선택한다

보부아르는 인간이 자유를 회피하려 한다고 봤다. 자유롭다는 건 모든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해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부담이 너무 무거워서 사람들은 ‘악의(Bad Faith)’라는 함정에 빠진다. 미리 포장된 역할이나 정체성을 선택해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규정해버리는 거다.

SNS 시대에 이 현상은 더욱 극명해졌다. “나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 “나는 자기계발에 진심인 사람”, “나는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람”. 각자 선택한 캐릭터가 있고, 그 캐릭터에 맞는 콘텐츠를 생산한다. 문제는 이런 역할들이 대부분 알고리즘이 좋아하는, 시장이 원하는 형태로 가공되어 있다는 점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개인 브랜딩에 대한 압박감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끊임없이 ‘나다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 일관된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오히려 자아 정체성을 혼란시킨다는 거다.

알고리즘이 만든 나, 시장이 원한 너

알고리즘은 예측 가능한 행동을 좋아한다. 분류하기 쉽고, 타겟팅하기 편한 사용자를 선호한다. 그래서 우리가 올리는 콘텐츠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라벨을 붙인다. “피트니스에 관심 있는 30대 남성”, “자기계발 콘텐츠를 좋아하는 직장인”, “여행을 즐기는 2030 여성”.

이 라벨들이 우리에게 되돌아와서 우리 자신을 정의하기 시작한다. 피트니스 콘텐츠가 잘 나가니까 계속 운동 관련 포스팅을 하고, 자기계발 글이 좋아요를 많이 받으니까 계속 그런 콘텐츠를 만든다. 어느 순간 우리는 알고리즘이 원하는 버전의 나를 연기하고 있다.

보부아르는 이런 현상을 ‘타자화(Othering)’라고 설명했다. 시스템이 개인을 특정 기능으로 축소시켜 이용하는 메커니즘이다.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소비 가능한 콘텐츠 생산자’로 가공된다. 개성은 마케팅 포인트가 되고, 진정성은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된다.

완벽한 라이프스타일의 함정

요즘 SNS를 보면 모든 사람이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운동하고, 건강한 식단을 챙기고, 독서하고, 취미생활하고, 인간관계도 원만하고. 하지만 이런 ‘이상적인 라이프스타일’도 사실 시장이 만들어낸 상품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류의 콘텐츠가 넘쳐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성공을 패턴화하고 상품화할 수 있다면, 그 패턴을 따라하려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무언가를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복, 영양제, 도서, 강의, 앱 구독료까지.

여기서 중요한 건 이런 라이프스타일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패턴을 ‘나다운 삶’이라고 착각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수많은 사람이 동일한 템플릿을 따라 살고 있으면서도, 각자 자신만의 특별한 스토리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브랜딩 압박의 실체

개인 브랜딩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문제적이다. 브랜드는 원래 상품을 다른 상품과 구별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다. 사람을 브랜딩한다는 건 사람을 상품으로 보겠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현대인들이 느끼는 브랜딩 압박은 실로 엄청나다. LinkedIn에서는 ‘전문적인 나’를 연출해야 하고, Instagram에서는 ‘감성적이고 트렌디한 나’를 보여줘야 하고, YouTube에서는 ‘전문성과 엔터테인먼트를 겸비한 나’를 구현해야 한다. 플랫폼마다 다른 버전의 나를 만들어내는 게 일상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진짜 나는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진짜 나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진짜 나’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 걸까?

모호함의 힘: 정의되지 않을 권리

보부아르의 답은 명확하다. ‘모호성(Ambiguity)’을 받아들이라는 거다. 완전히 정의되지 않은 채로, 계속 변하고 성장하는 존재로 남아있으라는 뜻이다.

이게 단순한 얘기가 아니다. 시스템은 우리를 분류하고 예측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 변한다면? 어제의 라벨이 오늘은 맞지 않는다면? 알고리즘이 우리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면? 그때야 비로소 진짜 자유가 시작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걸까? 먼저 자신에게 붙인 라벨들을 의심해보자. “나는 OO한 사람이야”라고 말할 때, 그 ‘OO’이 정말 나에게서 나온 건지 생각해보자. 혹시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틀에 나를 끼워맞춘 건 아닌지 점검해보자.

그다음엔 일관성의 압박에서 벗어나자. 어제 건강한 식단을 강조했다고 오늘도 똑같은 얘기를 할 필요는 없다. 피트니스에 관심이 많다고 평생 그 분야에만 머물러야 하는 것도 아니다. 관심사가 바뀌고, 생각이 달라지고,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게 당연하다.

시스템을 역이용하는 법

그렇다고 SNS를 완전히 끊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시스템을 아예 거부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지만, 시스템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

핵심은 플랫폼을 이용하되 플랫폼에 이용당하지 않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예상하지 못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보자. 일관된 이미지를 깨뜨리는 포스팅을 올려보자. 완벽한 라이프스타일이 아닌 현실적인 고민을 공유해보자.

물론 처음엔 engagement가 떨어질 수도 있다. 팔로워 수가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진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숫자에 연연하지 말고, 진정으로 나와 연결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집중하자.

자유는 편하지 않다

보부아르는 말했다. “자유는 편안함이 아니라 불안함이다.” 모든 게 정해져 있으면 편하지만, 그건 자유가 아니다. 매순간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에 책임져야 하는 게 자유의 실체다.

SNS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콘텐츠만 소비하고, 트렌드에 맞는 포스팅만 하면 편하다. 하지만 그런 편안함은 가짜다. 진짜 자유는 어제와 다른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용기,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담대함에서 나온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시나리오를 살고 있는가? 만약 그 시나리오가 당신이 직접 쓴 게 아니라면, 이제라도 펜을 들어보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모순적이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이야기가 진짜 당신의 것이라는 점이다.

시스템이 만든 ‘나’에서 벗어나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변화부터 시작할 수 있다. 오늘 하나만 해보자. 당신이 정말 하고 싶었지만 ‘브랜드 이미지’에 안 맞을까 봐 주저했던 그 한 가지를. 그게 진짜 자유의 첫걸음이다.

찬호

교육을 전공하고 현재 피트니스 쪽에서 일한다.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할 때 제일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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