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힘들지?” 30대 번아웃 탈출법

“좋아하는 일이라면 야근도 괜찮지 않나?” –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있다면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

열정이라는 이름의 함정

안녕, 심리상담사 수진이다. 매일 상담소에서 만나는 30대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제가 하는 일은 정말 좋아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힘들까요?”

이게 바로 우리가 빠지기 쉬운 열정의 함정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평생 일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말, 들어본 적 있지? 얼마 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연구 논문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이 말을 완전한 신화라고 단언하더라고.

사실 이 문장 자체가 위험하다. 좋아하는 일을 ‘진짜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어차피 일도 아닌데 더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결국 경계선이 무너진다.

한국 직장인 통계를 보면 더 충격적이다.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이 번아웃을 경험했고, 30대의 번아웃 심각군 비율은 56.4%로 50대보다 2배나 높다. 30대가 왜 이렇게 위험할까?

30대가 번아웃에 특히 취약한 이유

30대는 커리어에 대한 열정이 절정에 달하는 시기다. 20대 때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을 해보겠다”는 의욕이 넘친다. 동시에 승진 압박, 결혼과 육아, 부모님 돌봄까지 겹치면서 완벽한 스톰이 만들어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obsessive passion(강박적 열정)’이라고 부른다. 일에 대한 열정이 건강한 ‘harmonious passion(조화로운 열정)’을 넘어서는 순간이다.

강박적 열정의 특징은 이렇다:

  •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 일과 나 자신을 동일시한다
  • 일 외의 영역에서 죄책감을 느낀다
  • “이정도는 해야지”라며 스스로 기준을 높인다

혹시 이 중에 해당하는 게 있다면? 빨간불이다.

WHO가 공식 인정한 번아웃의 실체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번아웃을 국제질병분류에 공식 등재했다. 더 이상 “요즘 애들이 나약해서”라고 치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WHO가 정의한 번아웃의 3가지 특징은:

  1. 에너지 고갈과 극도의 피로감
  2. 일에 대한 정신적 거리감과 냉소주의
  3. 업무 효율성 저하

상담소에서 만나는 내담자들을 보면 이 세 가지가 단계별로 나타난다. 처음에는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라고 하다가, 점점 “이 일이 정말 의미가 있나” 싶어지고, 결국 “예전 같지 않다”며 자신을 탓한다.

특히 목적 지향적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더 위험하다. 의료진, 교사, 사회복지사, 상담사(나 포함해서), 비영리 단체 직원들 말이다. “사람을 돕는 일”이라는 사명감이 오히려 독이 되는 아이러니다.

실제로 캐나다 연구에서는 목적 지향적 직원들이 일반 직원보다 스트레스가 높고 웰빙 점수는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에서는 의사 자살률이 일반인보다 남성은 40%, 여성은 130% 높다. 충격적이지 않나?

열정과 번아웃 사이의 경계선 찾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열정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다. 건강한 열정파괴적인 열정을 구분하는 게 핵심이다.

건강한 열정의 특징:

  • 일을 할 때 몰입하지만, 끝나면 완전히 떨어뜨릴 수 있다
  • 일과 개인적 정체성을 분리해서 생각한다
  • 휴식을 죄책감 없이 즐길 수 있다
  • 다른 영역(가족, 친구, 취미)에도 에너지를 투자한다

파괴적인 열정의 특징:

  •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하다
  • “나 =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 쉬는 것을 게으름이라고 여긴다
  • 일 외의 모든 활동이 시간 낭비로 느껴진다

당신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30대를 위한 실전 번아웃 예방법

1. 디지털 경계선 설정하기

“항상 연결된” 문화가 번아웃의 주범이다. 미국 직장인의 50% 이상이 밤 11시 이후에도 이메일을 확인한다고 한다. 한국은 어떨까? 아마 더 심할 거다.

구체적인 실천법:

  • 퇴근 후 업무 관련 알림 끄기
  • 주말에는 업무 메신저 로그아웃하기
  • “긴급하지 않다면 내일 확인하겠습니다” 자동 응답 설정하기

처음엔 불안할 거다. “혹시 중요한 일을 놓치면 어떡하지?” 하지만 진짜 응급상황은 생각보다 드물다. 그리고 당신이 24시간 대기하지 않는다고 회사가 망하지 않는다.

2. 완벽주의와 작별하기

30대는 “이제 좀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이 강하다. 하지만 완벽주의는 번아웃의 지름길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Good Enough’ 원칙을 적용해보자. 모든 일을 100%로 할 필요는 없다. 80%만 해도 충분한 일이 대부분이다. 나머지 20%는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를 위해 아껴두자.

3. 감정적 완충제 만들기

일 외의 영역에서 심리적 완충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운동, 독서, 요리, 반려동물과의 시간… 뭐든 좋다. 중요한 건 일과 완전히 다른 영역의 활동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요리를 추천한다. 재료를 썰고 볶고 끓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음챙김이 된다. 게다가 결과물로 맛있는 음식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4. 정기적인 자기 점검하기

번아웃은 서서히 온다. 어느 날 갑자기 “아, 나 번아웃이구나” 깨닫기보다는, 정기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체크하는 게 좋다.

매주 일요일 저녁,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 이번 주 일에서 에너지를 얻었나, 빼앗겼나?
  • 휴식 시간에 진짜 쉬었나?
  • 다음 주 업무가 기대되나, 두렵나?

솔직한 답변이 나오면 대처할 수 있다.

조직도 변해야 한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리더와 조직의 역할도 중요하다.

하버드 연구진들이 제안하는 조직 차원의 해결책:

  • 직원의 간접 지표(결근율, 이직률) 모니터링
  • 명확한 괴롭힘 방지 정책 수립
  • “회복탄력성”이라는 개인 책임론에서 벗어나 시스템 개선에 집중

만약 당신이 팀장이나 관리자라면, “경계선 설정이 이기적이 아니라 오히려 이타적”이라는 메시지를 팀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번아웃된 직원은 결국 팀 전체의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열정을 지키면서 자신도 지키는 법

열정과 번아웃은 동전의 양면이다. 하지만 둘을 구분할 수 있다면 열정은 평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

핵심은 “지속 가능한 열정”을 만드는 것이다. 100미터 달리기하듯 전력질주하면 금세 지친다. 마라톤하듯 페이스를 조절해야 오래갈 수 있다.

상담소에서 만나는 30대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의 일이 정말 소중하다면, 그 일을 오래 할 수 있게 자신을 돌보세요.”

열정이 독이 되지 않으려면 적절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과도 너무 가까우면 숨이 막히듯, 일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오래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번아웃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다. 열정적으로 일한 결과일 뿐이다. 그러니 자신을 탓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건강한 경계선을 만들어보자.

당신의 열정이 평생 함께할 수 있도록 말이다.

참고자료

이수진

심리연구소에서 심리상담사 겸 콘텐츠 마케터로 일해요.

댓글 남기기

※ 본 글에 사용한 모든 이미지는 별도 표시가 없으면 Freepik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