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인데 더 지친다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심리 신호 4가지

오전 9시. 노트북을 켜고 이메일을 열었다. 커피도 있고, 출퇴근 시간은 제로, 복장 규정도 없다. 들으면 꿈의 업무 환경 아닌가. 근데 그 완벽한 조건 속에서 뭔가 계속 이상하게 지친다. 집중도 안 되고, 이유 없이 우울하고, 퇴근 시간인데도 컴퓨터를 끄지 못한다. 재택근무가 삶을 편하게 만든 게 아니라 오히려 조금씩 갉아먹고 있는 거라면?

누구에게나 재택이 맞는 건 아니다. 심리학자 Mark Travers 박사가 Psychology Today에 발표한 분석을 보면, 재택근무가 맞지 않는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4가지 심리적 신호가 있다. 나한테 해당되는 게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혼자 있으면 에너지가 빠진다는 느낌, 이상한 게 아니다

사무실에 있을 때 더 활기찼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 이건 의지력 문제가 아니다.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는 타입에게 고립은 생산성을 갉아먹는 독이다.

심리학에서 이 경향을 외향성(Extraversion)으로 설명한다. 외향형에 가까울수록 사회적 자극에서 동기와 에너지를 충전한다. 사무실의 짧은 잡담, 점심 자리의 농담, 복도에서의 우연한 눈인사 — 이 작고 사소한 상호작용들이 쌓여서 하루의 에너지를 유지시킨다. 재택에서 이 모든 게 사라지면 정기적인 화상회의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공백이 생긴다.

2023년 헬스케어 저널 연구에서도 장기 재택근무자에게서 고립감, 불안, 업무 만족도 저하가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그 연구를 보고 나서 “당연하지”라고 중얼거렸다. 근데 이게 당연한 일이 됐다는 게 문제다.

퇴근을 못하는 사람들 — 집이 곧 회사가 됐다

퇴근 후에도 카톡 알림을 확인하고, 밥 먹으면서 이메일을 읽고, 자기 전에 “빠르게 메모만”을 반복하고 있다면. 이건 의지력 문제가 아니라 공간 구분이 사라진 탓이다.

출퇴근이라는 물리적 이동이 사실은 신경학적 스위치였다. “이제 일 시작이야”, “이제 집이야”를 뇌에 알리는 의례. 집이 곧 사무실이 되는 순간, 이 전환 신호가 사라진다. 뇌는 두 모드 사이에서 계속 어정쩡하게 낀 채로 작동한다.

2024년 직업건강 저널 연구에서도 재택 환경에서 업무 부하가 늘고 일·삶 분리가 어려워지는 현상이 특히 가정을 돌봐야 하는 사람들에게서 두드러졌다고 정리했다. 퇴근을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은 게으른 게 아니다. 시스템이 없는 거다.

혼자서는 아이디어가 안 나오는 타입

재택을 하면서 뭔가 막힌다는 느낌이 든 적 있나? 산만함을 줄이면 집중은 되는데, 동시에 새로운 아이디어의 입력도 줄어든다. 창의성은 외부 자극과의 충돌 속에서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료의 엉뚱한 말 한마디, 다른 팀 회의 소리가 흘러들어오는 것, 커피머신 앞에서 잠깐 나눈 대화 — 이런 비공식적 상호작용이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팀의 창의성에 직접 영향을 준다. 재택 환경에서는 이 즉흥적 교류가 구조적으로 사라진다.

arXiv에 발표된 소프트웨어팀 연구(2022)에서도 원격·하이브리드 팀이 조율, 신뢰 형성, 자연스러운 소통에서 대면 팀 대비 어려움을 겪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이디어가 안 나온다고 느끼는 사람,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본다: 번아웃인데 원인을 잘못 짚고 있다

“재택은 편한데 왜 이렇게 지칠까?” — 이 말, 상담실에서 진짜 자주 듣는다. 재택 번아웃은 물리적 피로가 아니라 사회적, 정서적 고갈에서 온다. 이걸 모르면 문제의 원인을 계속 잘못 진단하게 된다.

재택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도 성격이 약해서나 적응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각자의 신경계가 작동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사무실에서 집중하기 힘든 사람이 있듯, 재택에서 심리적으로 소진되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이걸 빨리 알아차리는 거다. 맞지 않는 환경을 계속 버티면 번아웃은 물론 자기 효능감도 함께 무너진다.

재택근무와 번아웃
이미지 출처: Psychology Today

오늘 당장 해볼 수 있는 것

재택이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면, 일단 진단부터 해보는 게 먼저다.

  • 에너지 관찰: 사무실 출근일과 재택일의 기분·집중력·기운을 2주 기록해본다. 패턴이 보인다.
  • 퇴근 의례 만들기: 물리적 공간 이동이 없다면, 산책 15분이나 옷 갈아입기로 인위적인 스위치를 만들어본다.
  • 사회적 접촉 일정화: 즉흥적 교류가 없다면, 비공식적인 화상 커피챗을 주 1-2회 의도적으로 잡아본다.

완전히 재택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더 잘 작동하는지 아는 것 — 그게 번아웃을 막는 첫 번째 자기 이해다. 마침 오늘이 주중이라면, 퇴근 알람 하나 설정해두는 것부터 시작해도 충분하다.

이수진

심리연구소에서 심리상담사 겸 콘텐츠 마케터로 일한다. 가끔 코딩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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