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받는다고 느끼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제 과학의 힘을 빌려 내 몸이 보내는 정확한 신호부터 파악해보자.
어젯밤 또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온 김 대리가 거울을 보며 한숨을 쉰다. 언제부터인가 눈가에 깊어진 다크서클, 예전 같지 않은 체력, 그리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나는 자신. “아, 이게 다 스트레스 때문이구나” 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본 상황이다. 스트레스가 건강에 안 좋다는 건 모두 알고 있지만, 정작 내 몸이 보내는 구체적인 신호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최근 세계적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는 단순히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건강 위험 요소다. 연구진은 스트레스가 심장병, 암, 뇌졸중 등 주요 사망 원인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고 밝혔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스트레스 수준이 크게 증가했지만, 아직 예전 수준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스트레스가 평가되지 않으면 해결될 수도 없다”고 UCLA의 임상심리학자 조지 슬라비치(George Slavich) 박사는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스트레스 수준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까?
첫 번째 신호: 심장이 보내는 SOS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신호는 심장에서 온다. 단순히 심장이 빨리 뛴다고 해서 모두 스트레스 신호는 아니다. 중요한 건 ‘심박수 변이도(Heart Rate Variability, HRV)‘다.

건강한 사람의 심장은 규칙적으로 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미세한 변화를 보인다. 예를 들어 분당 60회로 뛰는 심장도 어떤 때는 0.9초, 어떤 때는 1.1초 간격으로 뛰는 식이다. 이런 자연스러운 변화가 줄어들고 심장 박동이 기계적으로 일정해지면 스트레스 상태를 의미한다.
요즘 애플워치나 삼성 갤럭시워치 같은 웨어러블 기기들이 HRV를 측정해주니 활용해보자. 평소보다 HRV가 현저히 낮아진다면 몸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신호다.
두 번째 신호: 코르티솔의 이중적 메시지
스트레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호르몬이 코르티솔이다. 원래 코르티솔은 위험 상황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근육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면역 시스템을 활성화하며, 집중력을 높여준다.
문제는 현대인의 스트레스가 일시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교통 체증, 직장 내 갈등, 경제적 불안 등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면 코르티솔이 계속 분비된다. 네이처 연구에 따르면, 단 10분간의 사회적 스트레스만으로도 1,500개가 넘는 유전자의 발현이 변화한다고 한다.
만성적으로 높아진 코르티솔은 근력 감소, 복부 지방 증가, 면역력 저하를 일으킨다. 특히 기상 후 30분 뒤의 코르티솔 수치가 중요한데, 건강한 사람은 이때 코르티솔이 급격히 상승해야 한다. 반대로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은 아침 코르티솔 반응이 둔화된다.
세 번째 신호: 피부가 전하는 감정의 언어
많은 사람이 모르는 스트레스 신호 중 하나가 ‘갈바닉 피부 반응(Galvanic Skin Response, GSR)‘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몸은 미세한 땀을 분비하는데, 이때 피부의 전기 전도도가 변한다.
거짓말 탐지기가 바로 이 원리를 활용한다.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손바닥이나 발바닥에서 미세한 땀이 나오고, 이것이 피부의 전기 저항을 낮춘다. 최근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밴드들도 나오고 있어 일상에서 스트레스 수준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평소보다 손바닥이나 겨드랑이에 땀이 많이 나거나, 별다른 이유 없이 피부가 화끈거린다면 스트레스 신호일 가능성이 크다.
네 번째 신호: 장이 보내는 두 번째 뇌의 메시지
“스트레스 받으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장은 ‘제2의 뇌’라고 불릴 만큼 감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장내 미생물 균형이 깨지고, 이는 다시 스트레스 반응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네이처 연구팀이 주목한 점 중 하나가 바로 장내 미생물의 변화다. 항생제 복용이나 이전 스트레스로 인해 장내 미생물 균형이 깨진 사람들은 새로운 스트레스에 더 과민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실제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불량, 복통, 설사 또는 변비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중요한 발표나 면접 전에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장 건강이 지속적으로 좋지 않다면 만성 스트레스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다섯 번째 신호: 수면 패턴의 변화
마지막으로 가장 명확한 스트레스 신호는 수면의 변화다. 스트레스는 우리의 일주기 리듬을 교란시킨다. 잠들기 어렵거나, 자주 깨거나, 새벽에 일찍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최근 수면 추적 앱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단순히 수면 시간만 보지 말고 깊은 잠의 비율과 렘수면 패턴을 살펴보자. 스트레스를 받으면 깊은 잠이 줄어들고 얕은 잠이 늘어난다. 또한 꿈을 많이 꾸거나 악몽을 자주 꾸는 것도 스트레스 신호 중 하나다.
개인별 맞춤형 대응이 핵심
흥미롭게도 네이처 연구에서 발견한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스트레스 반응의 개인차다. 남성은 발표나 경쟁 상황에서 코르티솔 반응이 더 크고, 여성은 인간관계 스트레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또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인이 된 후에도 스트레스에 더 취약하다. “초기 외상 경험은 세상을 예측 불가능하고 안전하지 않은 곳으로 인식하게 만든다”고 슬라비치 박사는 설명한다.
이는 스트레스 관리에 있어서도 개인별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어떤 사람에게는 운동이 효과적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명상이나 호흡법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과학적 스트레스 관리의 새로운 지평
좋은 소식은 스트레스 관리 방법도 점점 과학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지행동치료, 호흡 운동, 사회적 지지, 운동, 자연에서의 시간 보내기 등이 임상적으로 입증된 방법들이다.
특히 인지행동치료는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부정적 감정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 상황을 다시 해석하는 기법만으로도 사회적 평가가 포함된 과제에서 성과가 향상된다고 한다.
또한 베타 차단제나 항염증제 같은 약물적 접근법도 있다. 베타 차단제는 필요시 교감신경계를 진정시키고, 항염증제는 스트레스 후 지속되는 염증 반응을 줄여준다. 심지어 오메가-3 지방산도 스트레스 반응을 완화하고 염증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스트레스, 이제 제대로 관리하자
스트레스는 더 이상 ‘마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생물학적 현상이며, 방치하면 심각한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는 이를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도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내 몸이 보내는 신호들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개인에게 맞는 관리 방법을 찾는 것이다. 심박수 변이도, 코르티솔 반응, 피부 전도도, 장 건강, 수면 패턴 등의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김 대리도 이제 거울을 보며 한숨만 쉬지 말고, 자신의 스트레스 신호들을 체크해보면 어떨까? 스마트워치로 심박수 변이도를 확인하고, 수면 패턴을 분석하고, 장 건강을 점검해보자. 스트레스 관리는 이제 과학이다.
이 글은 Nature지에 발표된 최신 스트레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전문의와 상담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